부용산에는 질마산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부용산의 부용은 연꽃으로 알기 쉬우나 무궁화와 비슷한 꽃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어 연꽃으로 부르기도 한다.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고 부용산의 꼭대기에 ‘연화정수형’의 명당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부용산은 불교가 백제에 전래된 이후에 지어진 이름으로 보아야 한다.그리고 질마산은 부용산으로 부리기 전의 이름인데, 질마는 빨리 달리는 말로 풀이하거나 짐을 싣기 위해 소나 말 등에 올려놓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하늘에서 부용봉으로 말이 내린 것과 연관된 이름으로 보아야 한다.전해진 유래는 알 수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고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면서 많은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그래도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이 있었다.그러나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후 근 2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우리사회 어디에도 희망의 소리가 들리는 곳은 거의 없다.문재인 정부의 20대 국정목표는 다음과 같다.국민이 주인인 정부는 ▲국민주권의 촛불 민주주의 실현 ▲소통으로 통합하는 광화문 대통령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 ▲권력기관의 민주적 개혁이다.더불어 잘 사는 경제는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 ▲활력이 넘치는 공정경제 ▲서민과
아버지가 이승을 떠났어도 이승은 무탈할 것이다.아버지가 살던 허름한 방 칸마저 재개발로 용역들이 들이닥쳐 허물었다. 이렇게 아버지가 살았던 흔적들이 지워지고 나면, 아버지의 영혼도 삶의 무게에서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누군가는 말했다.‘새는 나뭇가지에 앉았다, 떠나가더라도 자신이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고… ‘땅에 엎드리고 살다가, 이승에 왔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게 자연에 대한 도리’라고… 문득 흙처럼 그을린 아버지가 그립다.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너를 보내니 마른바람이
북으로 흐르던 강물이 부용산 자락에 이르러 서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산자락 일대는 급격히 풍광을 바꾸며 장관을 이룬다.강 건너에서 보는 부용봉은 물위에 뜬 연꽃처럼 보이는데, 그게 ‘연화정수형’의 명당이란다. 연화라는 말로 알 수 있듯이, 공덕을 쌓은 중생의 영혼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명당이라는 것이다.물줄기가 휘돌며 만들어 내는 풍경이, 금강이라는 활대에 부용산 자락이 활시위에 매겨진 꼴이다. 지금이라도 부용산이 화살이 되어 금강을 건너서 날아갈 것 같다.산천의 정기가 물줄기를 타고 흘러와부용산 자락에서 서남으로 방향을 돌
“지금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보다, 더 활기찬 에너지가 잠재해 있다고요.”“난 오뚝이를 참 좋아한다.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살았기 때문인지도 몰라.”“더 높이 튀어 오르는 공처럼요?”“쓰러지지 않는 인생에 대해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누구에게나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달라요.”“누구도 가본 적이 없고 대신 갈 수 없어 두렵지만, 반드시 시도해야 하는 그 무엇이 바로 자신의 길이야.”일제로부터 해방됐지만, 이 땅의 작가들은 평온할 수 없었다.좌우로 갈린 나라에서 작가들은 적극적이든 또는 소극적이든 한쪽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해야
백제에 불교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니까, 아주 먼 옛날의 일이었다.위례성에는 삭발한 스님들이 불교를 믿으면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는 말을 하며 돌아다닌다는 데, 부용산 자락의 주민들은 그런 스님을 본 일조차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머리를 깎고 잿빛 장삼을 걸친 사람 하나가 둥근 나무통을 탁탁치며 마을로 들어서는데, 말로만 듣던 스님이었다. 마을에 들어선 스님은 걸음을 멈추고“참으로 오묘한 산천이로다.”부용산과 금강을 바라보며 감탄하더니, 손에든 목탁으로 비스듬히 누운 노송나무를 “톡”쳤다. 그러자 어찌 된
“타자를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너는 더 나은 파트너, 더 좋은 시민, 더 좋은 사랑하는 사람(lover)이 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야.”“그래요.”“그래, 너는 참, 먼 길을 달려왔다. 이제 달려온 그 길을 돌아보며 스스로의 속살을 찌울 시간이 되었지.”“중심 사건을 어떻게 하면 극적으로 할까 고민해요.”“감동적으로, 냉혹하게, 슬프게,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네, 고민하는 과정이 바로 소설 창작 과정이예요.”“소설가가 설계하고 창조한 허구적이지만 있음직한 세계를 독자가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해야 돼.”“그러려면, 하나
동해 건너 저 멀리 있다는 섬에서 살생을 일삼는 악귀를 다스리겠다는 숙정양은 배를 타고 서남으로 흘러가면서, 강변에 나와 손을 흔드는 주민들을 보면 같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나성리나 석장리 같은 곳에 이르러서는 배에서 내려“조상님들의 뜻에 따라 홍익하려 갑니다.”새로운 문명을 개발하고 돌아가신 선조들의 무덤을 찾아 절을 했다. 선조들의 은혜에 감사하며 선조들이 개발한 문명을 널리 퍼뜨려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숙정양을 태운 배가 공주 청양 논산 부여 서천 익산을 지나 군산을 빠져 나가니 넓은 바다였다
“너는 무슨 즐거움이 있냐?”“네?”“소설 쓰기는 너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가 말이야.”“…”나는 한참을 끙끙 댔다.“음, 저는 정말 소설 쓸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내일이 마감 날이고, 원고지 60장을 써야 하는데 아직 한 장도 못 썼다고 해보세요.”“육체적으로는 정말 힘든데…”“그때 쾌감이 제일 커요.”“그래? 너는 학대받아야 기쁨을 느끼는 마조히스트인가 보다. 하! 하! 하!”“그렇진 않아요.”“그럼, 너의 독자에게는 어떤 즐거움을 주기를 바라냐.”“특정 메시지나 즐거움을 주겠다는 목적은 없어요.”“그
북진하던 물줄기가 부용산 자락에서 서남으로 방향을 바꿔 흐르면서 주변의 경관은 나날이 변해갔다. 널따란 들만이 아니라 언덕과 산처럼 높은 곳도 매일 같이 침식되며 변해갔다.그렇지 않아도 살기 좋은 곳이라고 소문이 났었는데, 강물까지 흐르며 장관을 이루자구름을 타고 찾아오는 신바람을 타고 찾아오는 신산을 넘어서 찾아온 인간들을 달리고 달려온 인간그리고 놀라서 도망쳤다 돌아오는 신과 인간들이 같이 어울려 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내가 잘 났다.”“아니다. 내가 최고다.”서로 잘났다며 뻐기는 바람에 다툼이 잦았다.아침부터 시작된 도술
지금은 사막에 대형출판사 같은 오아시스가 몇 개 있고 그 부근에서 지지고 볶는다. 문단권력 논쟁은 오아시스 너머를 안 보는 사람들이 하고 있다.나는 사막을 건너고 싶다. 내가, 누군가 사막을 건너고 나면 문단권력 논쟁은 되게 웃기는 거였다고 알게 될 거다.아버지는 책에서 갈타니고전, 아서단토 등의 예술종말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안토니오네그리, 질들뢰즈, 조르조아감벤의 미학을 예술진화론으로 위치시켰다.“아버지, 예술은 사라지지 않을까요?”“인류가 종말을 맞는다면 예술은 사라지겠지만…”“인류가 지속되는 한&hellip
장수군 신무산 뜬봉샘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여기저기서 흘러나온 물줄기들과 같이 흐르며 막히는 것이 있으면 무너뜨리기도 하고 돌면서 무주 진안 금신 영동 옥천 보은 청주 대전을 거치며 북으로 흐른다.그처럼 남에서 북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부용산에서 이르러 갑자기 왼쪽으로 돌아서서 서남으로 흐르며 세종 공주 부여 강경 웅포 서천 군산을 거쳐 서해로 들어간다. 그동안 남대천 적벽강 양강 곰강 천내강 강경천 등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옛날 구석기시대에는 지금 우리가 사는 곳에 매머드와 공룡을 비롯한 거대한 초식성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날씨
“이렇게 설정된 문학적 논의영역 바깥에 위치한 작가·작품의 비평은 평단에서 소외돼요.”“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잡음이 되기 쉬어,”“심지어 지면 자체를 얻기도 어려워요.”“문학상과 문예지의 막강한 권위를 앞세워, 대형 문학출판사들이 사실상 문학을 사유화하고 있어.”“영화사가 영화잡지를 인수해 평론가들에게 돈을 주고 자사 영화 위주의 평론을 쓰게 하는 것과 같아요.”“대기업이 소유한 언론사에 돈을 주고 자사 제품에 대한 기사만 싣게 하는 것에 다름없다.”“문예지에서 평론가에게 특정 작가, 작품에 대한 비평을 청탁하는 행위를 근절해
조선은 울릉도에 대나무가 많기 때문에 죽도라고도 불렀다.그런데 일본의 어민들은 울릉도에서 안용복을 납치하더니, 죽도가 일본의 섬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러자 당시 정권을 장악한 남인들은“울릉도는 조선의 섬이고 죽도는 일본의 섬이다.”라는 사기적 국서를, 당시 일본 외교를 전담한 대마번에 건네, 울릉도만이 아니라 독도까지 일본에 건네 줄 뻔했다. 숙종이 총애하는 장희빈을 따르던 남인들이 저지른 잘못이었다.그러나 나라가 잘 되려고 그랬는지, 숙종의 장희빈에 대한 총애가 식으며 남인들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남구만을 비롯한 서인이 대신하게 되
“하지만, 저는 모든 심사 자리에 앉아 있는 선생님들의 명단을 확인할 때마다 그 실체를 경험해요.”“한국 문학과 문단권력의 문제! 심각하다고 생각해. 같은 선생님들이 획일적인 기준으로 문학성을 평가하는 문학상 제도도 문제야.”“매 시즌 문학상을 놓고 겨루는 이 리그에선 장편보단 단편이, 스토리보단 문장이, 서사보단 묘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의 취향과는 괴리가 있어요.”“문학상 상금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일이라 문학의 처신이 중요한 예술이라면, 그리고 예술가의 최종목표가 대학의 교수 자리라면 그것이 세상에 나가 뭘 할
세종시 연기면에는 고려 말에 이곳으로 이주했다는 임난수의 덕을 기리는 숭모각이 있다. 우연히 그곳에 들려 600살도 더 먹었다는 은행나무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은, 침략으로 나라를 발전시키려는 일본제국의 탐욕 때문이지만, 세계의 흐름도 모르고 패거리 정당을 만들어 권력싸움을 즐긴 양반들의 책임도 크다. 독립하여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탓을 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말을 하는 자도 있는데, 알아보면 대개 친일파의 후손이다.“해방이 되어 70년도 더 지났지만 정리된 게 하나도 없다.”라는 생각을 하는
“제도 예술에도 드물게 삶에 충실한 작품이 있어. 백준남, 민중예술, 발자크, 톨스토이, 1930년대의 아방가르드, 황영석, 박해노…”“이렇게 드물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위대한 예술은 제도가 요구하는 흐름을 위반할 때 나타나지.”“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예술가는 특권과 자격의 이름인데요.”“우리는 예술가라는 특수 집단에 예술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을 양도하고 있어. 사람 모두에게 정치능력이 있다고 봐.”“…”“예술이 무엇이냐?”“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기술이죠.”“삶 자체가 예술의 원료이며, 에너지
지금부터 50년 전이라면 아주 먼 옛날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그러나 50세가 넘은 사람 중에는 바로 엊그제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50년 전 쯤의 우리는“숭늉처럼 맛있는 것이 없는데, 왜 쓴 커피를 마시나. 매국노처럼.”커피가 맛있다는 사람을 역적 취급을 하며 애국자 행세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교과서에 숭늉 예찬론이 실리기도 하는 시절이었다. 또“쌀밥이 좋은가, 빵이 좋은가.”라는 담론이 벌어진 시기도 있었다. 밥보다 빵이 좋다거나 토스트에 쨈을 발라 먹는 것이 편하다며, 국에다 밥을 말아 먹어야 한다는 사람을 미개인
민중이 왜 저항하지 않고 끊임없이 독재와 파시즘의 출현을 허락하는가.민중은 심지어 자발적으로 굴종을 택하기도 한다. ‘원인은 습관에 있다’고 본다.독재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한 번도 자유를 누려보지 못한 사람은 자유가 없는 상황이 그리 불편하지 않다.또, 자유를 오랫동안 잃으면서 자유에 대한 의지나 저항하는 용기도 사라진다. 현실을 피해 달아나지 않으려면 맞춰서 살 수 밖에 없다.비굴의 시작이다. 독재자는 이 틈을 타, 아예 백성을 바보로 만드는 전략을 구사한다. 아둔하게 만드는 것이다.군부정권 때의 3S로, 성, 스포츠,
옛말에 ‘양약은 입에 쓰고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 있다.우리 역사상 나라를 위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충언을 했다가 임금의 귀에 거슬려 멸문지화로 혈족이 끊기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다.이러한 강직한 선비들의 충언이 조선 500년을 이어온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반드시 간신배가 등장하고 그들은 임금의 귀에 달콤한 말로 속삭인다.잠시 영달을 누렸지만 이들 역시 말로는 비참했다. 시장 주위에 이런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2018년 6.13지방선거에서 낙승한 세종시장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 위에 있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