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아버지가 이승을 떠났어도 이승은 무탈할 것이다.

아버지가 살던 허름한 방 칸마저 재개발로 용역들이 들이닥쳐 허물었다. 이렇게 아버지가 살았던 흔적들이 지워지고 나면, 아버지의 영혼도 삶의 무게에서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새는 나뭇가지에 앉았다, 떠나가더라도 자신이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고… ‘땅에 엎드리고 살다가, 이승에 왔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게 자연에 대한 도리’라고… 문득 흙처럼 그을린 아버지가 그립다.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너를 보내니 마른바람이 불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날빛 낮달이 슬퍼라. 오래도록 잊고 잊었던 눈물이 솟고, 그래 삶은 고단한 것이다.

아버지는 그저 어둠 속에서 한 번 우는 소리, 한 차례 토해내는 소리, 덤불 속에 있는 하나의 그림자인 경우가 많다.

나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영혼과 영혼의 만남을 추진한다. 선량하고, 정직하지만, 다소 나약하고, 정에 이끌려 일을 그르치지 말자고…

아마 급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이겠지만, 그래도 봄은 어김없이 이승을 따뜻하게 데울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진심으로 고마워했던 사람은 나를 주의 깊게 지켜보던 봉준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랜 벗이 지금도 곁에 있기 때문이다.

“언론자유, 평화를 향한 길, 지워지지 않을 발자취를 남기셨제.”
“…”

나는 좀 당황했다. 어차피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그 쓸쓸함을 강요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 해 겨울, 국가보안법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결심공판 당시였고마.”
“…”
“니 아버지의 쩌렁쩌렁 했던 최후 진술을 떠올렸제.”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라는 이육사의 시 ‘광야’였제 …수많은 동료와 후배들은 서로서로 그가 기리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자청하며 잘 살겠노라 약속했고마…”

“아버지는 치열한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모두는 하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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