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부용봉의 명당’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북으로 흐르던 강물이 부용산 자락에 이르러 서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산자락 일대는 급격히 풍광을 바꾸며 장관을 이룬다.

강 건너에서 보는 부용봉은 물위에 뜬 연꽃처럼 보이는데, 그게 ‘연화정수형’의 명당이란다. 연화라는 말로 알 수 있듯이, 공덕을 쌓은 중생의 영혼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명당이라는 것이다.

물줄기가 휘돌며 만들어 내는 풍경이, 금강이라는 활대에 부용산 자락이 활시위에 매겨진 꼴이다. 지금이라도 부용산이 화살이 되어 금강을 건너서 날아갈 것 같다.

산천의 정기가 물줄기를 타고 흘러와
부용산 자락에서 서남으로 방향을 돌려
지나는 곳곳에 평화와 행복을 심는다

부용봉이 물길을 건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휘돌아 흐르는 금강을 칭송하여 더 성스럽다. 물줄기가 부용산을 변화시킨다는 소문을 듣고 모여든 신과 인간들이 부용봉의 명당을 한번 보면 그것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심을 누르지 못한다.

“우리 집안만 잘 되면 그만이다.”

명당의 복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선조의 유골을 남몰래 묻으려 한다. 그것은 비겁한 일이기 때문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어두운 밤을 기다렸다, 미리 싸두었던 유골을 들고 도둑고양이처럼 부용봉에 오른다.

그리고 명당자리에 몰래 묻고 내려오면 다음 날부터 히죽거린다.

조상의 유골을 명당에 묻었으니 행운이 쏟아질 것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착각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이웃은 속일지 몰라도 신이나 하늘까지는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받아야 하는 복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에 사로 잡혀 ‘밀장’을 하면 산신이 노하여 역병이 퍼지기도 하고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난다.

“또 어떤 욕심쟁이가 또 밀장한 모양이다.”

자연의 계시로 밀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든 그것을 파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에 재앙이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밀장은 반드시 탄로 나고, 몰래 묻었던 조상의 유골은 길바닥에 버려진다. 그리고 밀장을 한 후손은 밤마다

“이놈들아, 나 좀 편히 쉬게 해다오.”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애걸하는 악몽에 시달려야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버려진 유골을 수습해서 양지바른 곳에 묻고 잘못을 뉘우칠 것이다.

그런데 한번 명당병에 걸린 사람은 그러질 못하고, 또 다른 기회를 노린다. 그러다 결국에는 벼락을 맞고 만다. 욕심이 과하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게으른 욕심쟁이는

“나만은 달라.”

자기는 특별하다며 반복해서 나쁜 짓을 하고, 그때마다 마을에는 재앙이 내려, 화목하던 이웃끼리 다투는가 하면, 멀쩡하던 아이가 죽기도 하고, 마을 어귀의 장승이나 솟대에 벼락이 내리기도 한다. 신이 분노한 것이다.

그런 사람 때문에 마을 인심이 나쁘기 그지없던 어느 날이었다.

스님 하나가 마을로 들어서는데, 이게 누군가, 영혼을 빼놓고 술을 마시다 실수를 한 것이 부끄럽다며 계룡산으로 떠났던 목초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목초가 떠난 것도 7년 전이었다. 그 동안 목초는 계룡산에 들어가 3년이나 수도하고도, 수양이 모자란다며 중국을 거쳐 인도까지 다녀왔단다.

목초는 백제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해주었다는 중국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깨달으려 했으나,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몰라, 석가가 태어난 인도까지 찾아갔다.

중국을 돌아다닐 때도 그랬지만, 인도의 어디를 가도 아픈 사람이 있었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도 많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선한 얼굴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것 같은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깨달음을 얻겠다며 인도의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더위를 피하려고 보리수 아래에 잠깐 앉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피곤해서 졸리는 것은 부용산 자락을 걸어 다닐 때나 중국의 태산을 올랐다 내려왔을 때나 마찬가지더니, 부처가 태어났다는 인도를 돌아다니다 피곤하면 졸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렇다, 내가 있는 곳이 지옥이고 극락이다.”

퍼뜩 그런 생각이 들며 몸이 가벼워졌다.

석가가 온갖 고행을 다하고도

‘왜 살아야 하는가.

를 깨닫지 못하다, 보리수 아래에서 쉬면서 깨달았다는데, 목초도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것이다. 우연히 깨달은 목초는 귀국하여, 각지를 돌며 병자를 보살피기도 하고, 글방을 찾아가 글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부용마을은 잊을 수 없었다. 술을 마시다 추태를 부린 일이 부끄러워 고행에 나섰기 때문에, 법력이 커질수록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을 씻으려고 부용산 자락을 찾은 것이다. 마을에 들어선 목초는 합장하고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부용산
행복을 공평하게 나누는 부용산

부용산의 은덕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려야 한다는 주문을 외우고, 그것을 적은 종이를 강물이 휘어도는 모래톱에 묻으며

“부용봉의 명당은 행복을 골고루 나누신다.”

어떤 게으름뱅이가 밀장을 한다 해도 복을 독차지 할 수 없다는 주문을 외운 다음에

“양지바르면 모든 곳이 명당이다.”

어떤 곳이 명당인가를 알렸고 마을을 떠나는데, 부용봉에 오색구름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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