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막에 대형출판사 같은 오아시스가 몇 개 있고 그 부근에서 지지고 볶는다. 문단권력 논쟁은 오아시스 너머를 안 보는 사람들이 하고 있다.

나는 사막을 건너고 싶다. 내가, 누군가 사막을 건너고 나면 문단권력 논쟁은 되게 웃기는 거였다고 알게 될 거다.

아버지는 책에서 갈타니고전, 아서단토 등의 예술종말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안토니오네그리, 질들뢰즈, 조르조아감벤의 미학을 예술진화론으로 위치시켰다.

“아버지, 예술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인류가 종말을 맞는다면 예술은 사라지겠지만…”
“인류가 지속되는 한…”
“예술이라는 활동양식이 사라질 수는 없어.”
“다중이 호흡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매 순간을 예술이라는 관점에서요.”
“모자라는 사람에게도 예술의지가 약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다중의 예술의지는 자본주의의 돈벌이에 접합돼 끌려가는 상태예요.”

“이 접합을 끊은 뒤, 자신의 생명을 돌보고, 삶을 배려하는 기술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예술 진화의 핵심문제야.”
“아버지는 수없이 써가는 책을 써가는 동안 포기하지 않는 원칙이 있어요?”
“한 권이라도 잘못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써야 해.”
“저는 하루의 99.9%는 소설 생각만 해요.”
“독자는, 그 수많은 책 중에서 어느 책으로 자신의 소설 읽기를 시작할지 모르는데, 집어든 책이 마음에 안 든다면 나머지는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 

‘매 순간 소설 생각만 한다’는 믿기 힘든 고백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나온 유머다. 문학의 위축 시대에 대처하는 작가의 자세랄까.
자신의 청년시절 소설 말고는 즐길 거리가 없었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은 게임과 TV와도 대결해야 한다.

“너에게 너무 가혹한 임무라는 생각이 들어.”
“여전히 현역인 아버지의 노력과 준비에는 뭐가 있는데요?”

나는 짐짓 무례하게 물었다.
“하! 하! 하!”

긴장이 풀리듯 아버지는 너털웃음을 내놓고 대답했다.

“내 책상에는 늘 중국의 시인 도연명(365~427)의 시집이 놓여 있다. 이야기와 실마리가 풀리지 않으면, 늘 그의 시 한편을 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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