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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세종에 살리라… ‘숭모각이 들려준 독도 이야기’(1)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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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7  0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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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세종시 연기면에는 고려 말에 이곳으로 이주했다는 임난수의 덕을 기리는 숭모각이 있다. 우연히 그곳에 들려 600살도 더 먹었다는 은행나무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은, 침략으로 나라를 발전시키려는 일본제국의 탐욕 때문이지만, 세계의 흐름도 모르고 패거리 정당을 만들어 권력싸움을 즐긴 양반들의 책임도 크다. 독립하여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탓을 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말을 하는 자도 있는데, 알아보면 대개 친일파의 후손이다.

“해방이 되어 70년도 더 지났지만 정리된 게 하나도 없다.”

라는 생각을 하는 인사와는 가까워질 수 없는 동포다.

해방된 우리나라는 독립지사를 고문했던 자들을 경찰로 중용하고, 만주에서 독립군을 죽이고 표창받았던 자가 장군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의 의도에 놀아나는 고급관리들이 나타나고, 동포를 끌어다 강제 노역을 시켜 돈을 번 일본재벌의 공정한 재판을 방해하는 천재들도 속출하는 것이다.

해방된 1945년의 우리나라에는 학생을 가르칠 실력을 갖춘 선생이 없었고, 그래서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한 우리의 학문도 뒤져, 일본의 술수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는 동안 친일파의 후손들은 축적된 가문의 지혜로 자신들의 세상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우리가 일본야구를 누르기도 하는 세상이 되었다.
개척정신이 강하여 세계 곳곳에 퍼져 살면서 세상의 움직임에 관여하는 분도 생기기 시작했고, 일본의 잘못된 논리를 간파하는 학자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 현실을 역행하며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머리 좋은 자들을 보면 조선시대의 통역관 박재흥이 생각난다.

숙종의 총애를 받는 장희빈이라는 미인의 위세가 등등할 때, 일본인들이 울릉도에서 안용복을 납치했다.

그때 조선과 일본은 울릉도를 대나무가 많다며 죽도로도 불렀다.

안용복을 납치한 일본인들은 울릉도를 일본의 죽도라며 안용복의 처벌을 요구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일본을 다스리는 장군은, 일본인답지 않게, 평화를 사랑했기 때문에, 죽도가 조선의 울릉도라는 사실을 확인시켜며 안용복을 송환하라 했다. 그런데도 대마도는 조선에

“죽도는 일본 땅이므로 조선인이 건너다니지 못하게 해달랍니다.”

장군의 뜻을 왜곡하며 영토분쟁을 일으켰다. 그러다 뜻대로 안 되자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을 일으키겠다.”

조선을 위협했다. 물론 그것도 장군이 한 말이 아니다. 대마번이 멋대로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그런데도 겁을 낸 조정대신들은 대마번의 요구를 들어주려 했다. 그때 안용복은
 
“모두 대마번이 꾸며낸 거짓말입니다.”

사실을 알리려 했으나 만나주는 관리가 없었다.
그때, 일본어 통역관 박재흥이 초량의 왜관과 대마도를 찾아다니며

“저는 조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조선인이지만 돈을 많이 주는 일본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 생각입니다.”

일본을 위해 일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자 일본의 사자 귤진중은

“믿음직스럽소. 앞으로도 일본을 위해서 일해 주세요.”

매우 기뻐했다. 원래 박재흥은 국고를 축내다 벌을 받은 일도 있다. 밀양에 첩까지 둔 것을 보면 좋은 머리로 자신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재흥이 사자를 만나고 밖으로 나오자 아비류라는 일본인이 밀실로 안내하더니

“큰일입니다. 죽도는 조선의 울릉도인데, 대마도주는 죽도가 일본 땅이라는 증서를 받으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는데, 박재흥은 그게 무슨 걱정이냐는 듯, 여유롭게 웃으며 아비류의 귀에 대고

“울릉도는 조선 땅이고 죽도는 일본 땅이니, 조선인들이 죽도에 건너가지 않는 것으로 하면 해결되는 것 아니오,”

“아니 죽도가 울릉도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오히려 아비류가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도 박재흥은 껄껄거리며 왜관을 나와, 한양에 올라가, 조정대신들에게 그런 해결책을 제시했고, 조정의 예조참판 권해는

“우리나라는 울릉도도 멀다고 못 가게 하는데, 일본의 죽도에 건너가게 하겠습니까.”

라는 내용의 국서를 작성하여 왜관에 건넸다. 정직하지 못한 국서이고 위험하기 그지없는 국서였다.그때 만일 일본이 그것을 받아서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꺼내보이며

“우리는 조선의 울릉도가 아닌 일본의 죽도에 건너갑니다.”

일본의 죽도에 간다며 울릉도에 건너다닌다면 어찌되겠는가. 또 울릉도를 죽도라며 건너다니는 상황에서, 독도(송도)가 우리의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라가 돈을 받고 벼슬을 파는 제도에 참여하여, 통정대부라는 벼슬을 받은 안용복이

“일본이 말하는 송도와 죽도는 조선의 자산도와 울릉도입니다.”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지금도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의 섬인 것이다. 외교를 담당하는 조정대신들이 하지 못한 일을 안용복이 해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안용복 장군’이라고 부르며 숭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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