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부용산과 질마산’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부용산에는 질마산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부용산의 부용은 연꽃으로 알기 쉬우나 무궁화와 비슷한 꽃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어 연꽃으로 부르기도 한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고 부용산의 꼭대기에 ‘연화정수형’의 명당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부용산은 불교가 백제에 전래된 이후에 지어진 이름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질마산은 부용산으로 부리기 전의 이름인데, 질마는 빨리 달리는 말로 풀이하거나 짐을 싣기 위해 소나 말 등에 올려놓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하늘에서 부용봉으로 말이 내린 것과 연관된 이름으로 보아야 한다.

전해진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말이 부용봉으로 내려왔다는 것은 매우 신성한 일이다.

하늘에서 산으로 신이 내려온 이야기라면 천신 환웅이 태백산으로 내려온 것이 생각난다.
그때 환웅은 물론 거느리고 내려온 풍백 운사 우사, 그리고 3천도가 무엇을 탔는지 분명하지 않다. 구름을 탔는지 바람을 타고 강림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런데 단군조선 시대의 마차가 유물로 발견되는 것을 보면 말을 타고 내려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빛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용이 끄는 오룡거를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거기다 주몽이 수레를 타고 남하했다는 기록이 있어, 고구려의 시조는 말을 타고 내려왔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백제의 시조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전하는 기록은 없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온조를 주몽의 아들이라 했는데, 그것은 백제를 욕보이는 일이다. 백제왕의 성이 부여씨였고, 백제의 왕도가 부여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백제의 시조는 천손이 세운 부여국과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말을 타고 강세한 천신이 건국한 것으로 전하는 것은 신라의 혁거세가 처음이다.

혁거세는 백마가 하늘에서 날라온 알에서 태어났다. 혁거세가 알을 깨고 나오자 여섯 고을의 촌장들이 열세 살까지 보살피다 왕으로 삼았다. 혁거세가 뛰어난 능력이 있거나 힘이 세어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알로 내려왔기 때문에 왕을 시킨 것이다. 그만큼 천신은 절대적이었다.

부용산의 별명이 질마산이었다는 것은 말을 타고 부용산으로 내려온 천신, 즉 천제의 명을 받은 천자나 하늘에 살던 신이 부용산 자락에 내려와 세상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천신이 강세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바로 짝을 찾아 혼인하는 일이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의 신단수에 내리자

“우리도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으로 변하고 싶다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만 먹으며 동굴 속에서 ‘삼칠일’을 지내게 하여, 곰이 웅녀로 변하자,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

해모수도 마찬가지였다. 오룡거를 타고 내려온 해모수는 압록강에서 물놀이 하는 유화와 혼인하여 주몽을 낳았다. 백제의 것으로 보이는 부여의 신화도 마찬가지다.
북쪽 어느 나라의 왕후가 방에 누워있는데 계란 만한 빛덩어리가
왕후의 몸에 내려앉으려 하자

“애그머니나.”
왕후가 놀라서 피했으나, 이리저리 따라다니다 배에 내려앉았다.

그 후로 회임한 왕후가 아이를 낳았다. 왕은 자신이 아닌 햇빛을 받아 태어났다고 에 화를 내며 아이를 돼지우리에 던졌다. 죽이려 한 것이다. 그러나 돼지들이 입김을 불며 보호하자, 더 화가 나서, 이번에는 마구간에 버렸으나 말도 입김을 불며 보호했다.

그때서야 왕은 천제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왕후에게 키우게 했는데, 그가 곧 부여의 동명왕이었다.
사람들은 동명을 주몽과 같이 취급하는데, 생각해 볼 문제다. 동명이 새운 부여가 남방으로 이동하여 백제라고 했을 수도 있고, 하남위례성에 백제를 세웠을 수도 있다.

동명은 주몽만이 아니라 추모(鄒牟) 중모(中牟) 중해(衆解) 상해(象解) 도모(都牟)라고도 한다. 부여와 고구려의 신화가 아주 비슷하여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고구려와 경쟁하는 백제의 신화로 보아야 한다.

백제의 근초고왕은 평양성에서 고구려 고국천황을 전사시켰고, 고구려의 장수왕은 아차산에서 백제의 개로왕을 죽였다. 그 정도로 백제는 고구려와 사이가 나뻤다. 그런 백제가

“우리의 시조 온조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아들이다.”
라는 말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조가 알에서 나왔다는 것은 주몽만이 아니다. 박혁거세나 김수로도 마찬가지였다.

김해의 구지봉 인근에 나누어 사는 9부족이 제사를 지내는데, 하늘에서, 산봉우리의 흙을 파면서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추라는 말이 들렸다. 그러자 아혼 촌장들이 입을 보아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
노래하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자주색 줄이 내려오는데, 끝에 붉은 보자기로 싼 황금 상자가 매달려 있었다.

부족장들이 달려가 상자를 열어보았더니, 여섯 개의 황금알이 나왔다. 그것을 부족장들이 소중히 지키는 가운데 10여 일이 지나자 청년들이 알에서 나왔다.

그중에서도 용모가 뛰어나고 슬기가 넘치는 아이가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이었다.
그렇다면 질마산에 말을 타고 강림한 신은 누구이고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질마산의 또 다른 이름 ‘여자산’과 같이 생각할 문제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