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왜에 간 부용산의 여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동해 건너 저 멀리 있다는 섬에서 살생을 일삼는 악귀를 다스리겠다는 숙정양은 배를 타고 서남으로 흘러가면서, 강변에 나와 손을 흔드는 주민들을 보면 같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나성리나 석장리 같은 곳에 이르러서는 배에서 내려

“조상님들의 뜻에 따라 홍익하려 갑니다.”

새로운 문명을 개발하고 돌아가신 선조들의 무덤을 찾아 절을 했다. 선조들의 은혜에 감사하며 선조들이 개발한 문명을 널리 퍼뜨려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숙정양을 태운 배가 공주 청양 논산 부여 서천 익산을 지나 군산을 빠져 나가니 넓은 바다였다. 일렁이는 파도에 배가 흔들리자, 숙정양이 뱃전에 올라 두 팔을 뻗어 올리며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로 강림하셨듯이
숙정양도 홍익하려고 동방으로 갑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러 동방으로 간다고 아뢰자, 하늘의 해가

“번쩍, 번쩍, 번쩍.”

세 번 빛나고 바다가 잔잔해진다. 숙정양이 탄 배가 곰소 영광 목포 땅끝 마을을 거쳐, 크고 작은 섬들이 이어지는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삼신이 보석을 뿌려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섬 사이를 빠져나가다 길을 잃기라도 하면, 그때마다 나타나는 까마귀의 인도로 부산에 이르니, 그야말로 광활한 바다였다. 그곳에서 이것저것을 챙겨 배에 싣고

“여기부터는 너희들이 앞서거라,”

왜인들을 앞세웠다. 그들은 건너다닌 일이 많다며, 거침없이 배를 저어 1주야를 가니 커다란 섬이 나타나는데, 대마도라 했다.

“한국의 배다.”

숙정양의 배를 본 주민들이 해변에 나와 소리치며 손을 흔드는데, 허리에 찬 돌도끼가 흔들거렸다. 숙정양은 크게 반기는 그들에게 그릇과 식량을 나눠주고 또 1주야를 가니 일기였다. 그곳 주민들에게도 약간의 생활도구를 내려주고 나아가니 육지 같은 섬이었다.

“저곳이 저희들이 사는 곳입니다.”

배를 세운 왜인이 눈앞에 보이는 섬을 가리키면서 몸을 떤다. 악귀들이 생각난 것이다. 원래 그곳 주민들은 단군조선의 유민들이 전해준 문명의 혜택을 입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의 서쪽에서 배가 나타나면 뛰어나와 손을 흔들며 반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는 한국에 가까운 곳에 산단다.”

삼한과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을 자랑하며, 삼한에서 건너오는 사람을 우두머리로 삼으려 했다. 그런 섬에 밤마다 악귀가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다는 것이다.

“알았다. 이제부터는 나에게 맡기거라.”

숙정양은 공포에 떠는 왜인을 안심시키고, 뱃전에 올라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저고리와 치맛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더니, 양손에 든 비단자락, 목과 허리에 두른 비단자락들도 같이 휘날려, 새벽에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햇살처럼 퍼져나갔다.

“와, 신령님이 나타나셨다.”

해변에 나와 손을 흔들던 주민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비단자락들을, 상서로운 기운이 온 세상에 퍼지는 것이라며 땅바닥에 엎드린다. 숙정양이 그들을 일으켜 세우며

“나무를 주워다 쌓거라,”

이곳저곳에 나뒹구는 나무를 쌓아올린 다음에 불을 붙였다. 한 번 불이 붙은 모닥불은 꺼지는 일없이 활활 타올라 밤이 되어도 대낮처럼 밝았다. 숙정양은 불꽃이 시들만하면 다시 나무를 올리라며

나와서 불을 쬐는 이는 우리 이웃이고
나오지 못하고 웅크린 자는 악귀로다

숙정양이 노래하며 춤을 추어, 불꽃이 숙정양인지, 숙정양이 흔드는 옷자락이 불꽃인지 구별이 안 된다. 그것을 바라보던 토신과 토민들도 흥에 겨워 벌겋게 물든 몸을 흔드느라 밤이 깊고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다.

한편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리는 귀신들은 해가 졌는데도 모닥불로 대낮처럼 밝아서 나타나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어둠 속에서

어두워져야 우리가 나설 수 있지.
모닥불이 꺼지고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리는데, 모닥불은 꺼지지 않은 채 새벽이 가까워지자, 허둥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숙정양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조금씩 안으로 이동하며 새벽닭이 울 때까지 모닥불을 피웠고, 귀신들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 밤에도 안심하고 나다닐 수 있는 곳이 늘어갔다.

“급한 일이 있거든 횃불을 들고 다니거라.”

숙정양은 밤에 외출할 일이 있으면 횃불을 들고 다니게 했기 때문에, 어둠속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악귀들은 나타나지 못하여, 주민들은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건너온 문명이 원망스럽다
어둠을 찾아 동쪽으로 물러나야겠다

악귀들은 숙정양이 있는 곳에서는 더이상 버틸 수 없다며 동방으로 도망쳤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횃불을 밝혀든 여신들이 숙정양을 찾아가

“우리의 왕이 되어 주세요.”

왕으로 모시고 싶다고 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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