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아름동의 ‘두루근린공원’에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글씨를 모시는 어서각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성계와 관련된 유래이기 때문인지 ‘역사공원’이라고도 한다.이성계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필적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범지기마을 7,8단지 사이의 층계를 올라 숲길을 천여 보 걸으면, 단청이 청결한 정자가 삭막할 수도 있는 아파트 단지에 역사의 여유를 제공한다. 계룡산에 도읍하려 했던 인연에 근거하는 유적인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우물가에서 맺어진 사랑이 깃듯 정자였다.고려의 이성계가 호랑이
북한과 미군이 회담을 시작한 2018년에는 ‘미군유해 송환’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1950년 6월 25일에, 우리는 열강들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때 많은 군인이 전사했는데, 미군만 해도 3만 여명이었다.그 유해의 일부가 아직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에 있는데, 그것을 돌려보낸다는 이야기다.북한과 미국은 1988년 12월부터 회담을 시작하여 1990년에 5구를 송환했고, 1996년에는 북미가 공동으로 발굴할 것을 합의하여 2007년에 6구를 송환한 것을 포함하여
“추석 무렵, 추수를 앞둔 황금 들판에는 메뚜기가 후둑후둑 튀었제, 그 메뚜기를 잡아 기름과 소금에 볶아 먹으면…”“별미였겠어, 꼴깍, 침 넘어간다.”“초등학교 운동회 때 릴레이는 인기 있는 종목이었제.”“맞아 릴레이는 실력보다 승부를 결정하는 일이 종종있어.”“잘 뛰는 것 못지않게, 바통을 잘 념겨야하기 때문이제.”“바통이 다른 손으로 넘어가면, 역전되는 일도 자주 있어서.”“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곤 했제.”“아버지에서 아들로 바통 대신, 머리통을 받아 달려야 하는 인생이라는 릴레이라면 어떨까?”“…”
“취나물은 뒷산에 가믄 많이 있제. 곤드레는 보마귀골에, 고사리는 칠봉산에, 팥고비는 너드게터에 많제. 산나물 이름만 대보그라. 내 다 알켜줄게. 알켜주도 몬 찾아가.”이제는 그렇게 떠나온 고향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타지를 떠돌며 살아야한다.너른 세상에서 멋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낯설고 두려웠던 대도시가 서울의 대단위 아파트단지에서, 소시민으로 섞여 살아가며, 개인주의자의 삶을 살아가며, 고단할 때면 어김없이 배릿한 냄새의 고향을 떠올렸다. 가을이 시작되는 들길엔 이야기로 가득하다.촘촘히 익어가는 옥수수, 풍금 소리로 밀려오는 나
우리가 일본에게 식민통치를 당했다는 것은 민족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고종을 총검으로 위협하는 이등박문의 뜻에 따라, 매국에 앞장섰던 이완용이, 삼일 독립운동이 전개되자 삼일운동은 불순한 세력이 선동한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든 말든 너희의 처지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포기하라. 자꾸 폭동을 일으키면 사살이라는 사랑의 매를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개인의 영달에 만족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깔아 뭉겠다.그런 매국노들이 판쳤기 때문에, 일본은 우리에게, 천황이 사는 집을 향해 절을 하라고 강요했고,
봉준이는 잠시 칠곡의 일제 강점기에 지은 붉은 벽돌 교실을 떠올렸다. 붉은 교실 옆에는 아카시아 꽃들이 하얗게 늘어지고, 그 향기가 창문을 넘어오던 어느 오월, 까까머리들은 선생님의 맨손 지휘에 맞추어 목청껏 장난기 속에 노래를 불렀다.“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로 이어지던 노래.그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달할 때쯤이면 어떤 녀석은 제 풀에 눈시울도 조금 붉어졌다.그랬다. 가슴이 먹먹할 정도의 애잔한 멜로디와 슬픈 노랫말로 인해. 짓궂은 뒷자리 머리 굵은 친구들은 일부러 음
백제는 일본에 한자를 비롯한 많은 문화를 전해주었는데, 한자를 읽고 쓰는 일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것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백제인들은 왜 저렇게 똑똑할까?”왜인들은 한자를 읽고 쓰는 백제인들을 신처럼 여겼다. 그리고 백제인을 모시고 농사짓는 법만이 아니라 무기를 만드는 법,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남보다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백제인을 보면 스승으로 모시려 했다.나쁜 자들은 백제에 건너가 납치하기도 했다. 원래 왜인들은 원하는 모든 것이 있는 나라를 ‘한국’이라 쓰고 ‘카라쿠니’로 불렀는데,“
“타인에 기대 살아가려는 자는 가짜 산 자인기고. 하! 하! 하!”“올타고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일 거야.”“기것은 부끄러움과 함께 우리가 잘못 되어있음을 인정하고, 아프겠지만 용기를 말하는 것이겠제.”“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많이 달라질 거야.”“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이 취한 서로 다른 태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하고마.”“아, 독일은 전범을 가려서 처벌하고, 부끄러운 역사 시설들을 보존하며 반성하고있어.”“맞고마!”“철학과 예술의 나라에서 어떻게 히틀러가 가능했는지 지금도 성찰하고 있
“육체는 비록 늙었어도 정신의 젊음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특질이제.”“특질?”“특권이고마.”“좋은 말이야.”“가족과 직장, 지배자들이야 말로 인간의 정신적 젊음을 죽이는 적들이제.”“아하, 오늘따라 호전적인데?”“남자라면 엄메의 과도한 애정에서 벗어나고 아내와도 맞서야 하고마.”남성우월주의적 관점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보수적인 남자다움의 덕목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자립이다.“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자신이야.”“의지할 수 있는 것도 자신뿐이제.”“그것은 철칙이고.”“기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그러면?”“
밀마루 전망대에서 제천으로 뻗어 내리는 산줄기에 초려공원이 들어선 것은 2015년의 일이고, 그 자리에 초려 이유태의 묘를 쓴 것은 17세기였다. 초려를 기리는 사람들이 갈산에 서원을 세웠으나 소실된 것을 복원하여 이유태의 학문과 덕행을 본받으려는 것이다.그런데 위례성에 도읍했던 백제가 웅진으로 도읍지를 옮겨오던 시절에도, 그곳에는 학동들이 모여서 글을 읽는 태학당이 있었다. 백제는 일찍부터 문화가 발전된 나라로, 이웃나라 신라는 물론 바다건너 왜에게도 전해주었다. 한자를 쓰고 읽는 법을 비롯하여, 물길을 내고 뚝을 쌓는 방법, 노
정부종합청사의 고용노동부 앞을 흐르는 방축천을 건너서 걸으면 연양 초등학교와 유치원, 그리고 올망유치원으로 둘러싸인 동산에 이르는데, 그곳에 기와집이 자리하여, 하늘 높이 솟은 아파트들한테 받는 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호기심에 이끌려 다가가 보았더니, 호서 오현의 한 분이라는, 초려 이유태를 기념해서, 세종시가 2015년에 완공했다는 ‘초려공원’이다.호서란 충청도의 다른 호칭으로, 동쪽의 영남과는 소백산맥, 남쪽의 호남과는 금강, 경기도와는 북쪽의 한남정맥을 경계로 한다.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명나라를 숭상하고 일본을 달랜다는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뜻에 따라 계룡산에 도읍을 세우려 했으나,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고 남산을 진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정도전의 뜻에 따라 한양에 도읍하기로 했다.그런데 조선은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이방원이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개국공신 정도전도 왕자의 난에 개입했다며 살해했고, 나쁜 왕은 바꾸어야 한다는 정여립도 역모죄로 죽이고, 이인좌난에 참여한 정희량도 처단했다. 조선이 정씨를 박해한다고 볼 수 있는 일들이었다.조선은 양반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재주가 없어도 벼슬을 하고, 나쁜 짓을 해도 벌을 받지 않는 세상이었다. 양반은 백성
풍수란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의 줄임말로, 생명을 불어넣는 땅의 기운을 살핀다는 말이다.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에도 퍼진 사상으로,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온다.“어떤 풍수가 좋은가”그것을 알려면 산하의 위치와 운기를 보아야 하는데, 산과 강이 잘 어울리는 곳에 자리를 잡아야 원하는 운기를 얻을 수 있다.그런 면에서 보면 세종시는 국사봉을 중심으로 해서 원수산과 전월산으로 이어지는 좌측 줄기와 장군봉으로 내려뻗은 우측 줄기로 둘러싸인 평야에 자리하여, 아주 좋은 풍수란다.이것은 무학대
자식과 편지를 주고받기 위해 뒤늦게 한글까지 배우셨는데, 그 후 아버지도 돌아가신다. 그는 남 원망을 안 한다. 모든 것을 자신 탓이라 여긴다.초조해 하지 않고 기다리고 인내한다. 삶을 관조하지 말고 느끼라고 말한다. 행동하라고 말한다.그는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교도소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한 무리 참새의 움직임을 소중히 여기며, 서러운 운명의 봉선화꽃을 사랑한다.그러나 그 사랑은 결코 감성적이지 않다. 자유의지의 고결한 시민의 생각이 느껴지는, 우리의 슬프고 슬픈 역사를 갖게 한다. 봉준이는 인생을 바라보는 남다
“내 아는 여성 문인은 식사 대신 케이크와 도넛, 캐러멜 마키아토 커피를 달고 살아.”“몸은 괜찮노?”“당연히 비만이지.”“비만이라, 당연지사제.”“먹을 때마다 죄의식과 자기혐오를 호소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네 스트레스 알지? 나를 위로하는 것은 얘들뿐’이라고 하지. 하! 하!”“외롭고 지루한 노동의 연속, 취미도, 이동도, 친밀감도 없는 일상에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어쩐노?”“자극적인 먹을거리에 대한 기대 외에는 시간을 견딜 방법이 없어.”“내 가난한 어린 시절, 엄메는 열식구의 생활을 꾸리느라 집안일에다 삯바느질까
“내장을 뺀 명태를 완전히 말리지 않고 반 건조한 상태로 한 거예요.”“코다리 찜으로 많이들 먹제.”“봉준아, 코다리는 방언으로 아직 국어사전엔 없어.”“뭐꼬?”“‘노가리를 풀다’나 ‘노가리를 깐다’처럼 많이 쓰는, 거짓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노가리는 명태의 새끼를 일컫는 말이야.”“우야꼬, 예서도 글얘기할끼가.”“맞아요. 생태, 동태, 황태, 북어, 코다리, 노가리로 명태는 잡힌 상태와 시기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대요.”“그래요. 얼리지 않은 것은 생태, 얼린 것은 동태, 말린 것은 북어라하죠.”“기래. 한겨울 추운 곳에서,
이웃나라 일본에는 빗자루를 모시는 신사가 있다.빗자루를 정성으로 모시면 아이가 순조롭게 태어나고,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뿐만 아니라, 장차 큰 인물이 된단다. 그래서 아이를 회임한 집은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둔다. 그러면 빗자루에 내려와 순산을 도와 준단다.원래, 소원을 이루고 싶으면, 신을 기쁘게 해야 하는데, 그러러면,맛있는 음식과 술을 가득 차리고,즐겁게 노래하며 예쁜 춤을 추며 귀한 물건을 많이 바쳐야 한데요신의 기분이 좋아지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데, 그때“소원을 들어주시면 더 잘 모시겠습니다”라는 말을 덧 붙여야 한
옛날부터 두루뜰은 살기 좋은 곳이었다.한 번이라도 그곳에 가본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그곳에서는 아무리 일을 해도 힘들지 않았고, 무슨 씨앗이든 뿌리기만 하면 무럭무럭 자라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어느 집에나 마당에는 곡식을 담은 가마니가 가득했고 광에는 먹을 것을 가득 담은 항아리로 넘쳐났다. 모든 집이 다 그래서, 문을 열어 놓고 자도 도둑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이집에서 곡주를 내오니. 저 집에서 닭을 삶아오고할아버지 생일 떡을 돌리는데 돌잔치 음식도 돌린다서로 가져온 것을 나누어 먹으며 사이좋게 살았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내 반찬 통에 먼저 들이대며 퍼먹던 친구놈도 생각나네요.”“왁자지껄한 교실의 풍경, 짭짜름한 반찬 냄새였고마…”“어떤 음식은 그저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정서와 풍경을 불러일으켜요.”“밤늦은 시간, 심야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깊이 묻어놓은 사연이 있어요.”웃음이 매력적인 하림은 봉준이 기둥서방이다.행복해 보이는 그들을 보니 입에는 군침이 돌고, 마음에는 온기가 어린다. 번화가 뒷골목에 있는 작은 밥집이자 술집인 심야식당이다.“비좁은 이 술집의 영업시간은 밤 12
수천과 향란을 태운 칠룡선이, 푸른 하늘을 비상하듯 물결을 헤치며 나가자, 하늘을 날던 파랑새들이 뒤따라가며하늘의 정기를 받은 수천이 바다 건너의 여인국에영원히 번성하는 씨를 뿌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네이국의 슬기가 가득한 여인의 손을 잡고 귀향한다네수천 부부의 귀향을 축하는 노래를 합창한다. 수천이 향란의 손을 잡고 칠룡선의 뱃머리에 서서고향을 나서 이곳저곳을 주유하며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며한 방울이 물이 모이며 길고긴 장강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하늘의 일월성신이 강산의 음양과 어울린다는 것도 알았노라천하를 주유하며 터득한 지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