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나물은 뒷산에 가믄 많이 있제. 곤드레는 보마귀골에, 고사리는 칠봉산에, 팥고비는 너드게터에 많제. 산나물 이름만 대보그라. 내 다 알켜줄게. 알켜주도 몬 찾아가.”

이제는 그렇게 떠나온 고향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타지를 떠돌며 살아야한다.

너른 세상에서 멋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낯설고 두려웠던 대도시가 서울의 대단위 아파트단지에서, 소시민으로 섞여 살아가며, 개인주의자의 삶을 살아가며, 고단할 때면 어김없이 배릿한 냄새의 고향을 떠올렸다.
 
가을이 시작되는 들길엔 이야기로 가득하다.

촘촘히 익어가는 옥수수, 풍금 소리로 밀려오는 나락들, 꼬투리마다 여무는 콩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여름이 남은 불시들은 고추밭에서 활활 타고 능금은 빨갛게 익어간다.

가을은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이 달려가는 들길에 맨 먼저 찾아온다. 아이들처럼 즐겁게 들판을 달리며… 초등학교 동창들은 명절 때마다 언제 집에 내려오느냐고 채근한다.

“이제 얼마 뒤면 민족의 대명절 추석아이가?”
“그래, 네가 언젠가 설날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어. 할머니가 너에게만 부침개를 주셨다고 했잖아?”
“내 언제 그랬노? …아, 기래, 맞다.”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컸다. 할머니의 무릎은 봉준이 차지일 때가 많았다. 무릎 베고 누운 봉준이에게 들려주신 옛날이야기는 언제나 시작이 같았다.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짧은 토막의 말이지만 위력은 대단했다.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수백년 전의 아득한 옛날로 진짜가 있는 듯했으니… 게다가 ‘옛날에는 호랑이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꽤 친했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서움과 친근함을 함께 품은 채 옛 분들의 삶 속에 가까이 있던 호랑이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사라진다.

일제는 주민과 가축에게 피해를 준다며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든 호랑이, 표범, 스라소니를 포함한 고양잇과의 생명마저 닥치는 대로 죽인다. 곰과 늑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우리나라의 마지막 호랑이가 사살된다.
공식기록은 그렇다. 호랑이, 표범, 스라소니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들리기는 한다. 정말 살아남아 있다면 좋겠지만. 

“추석예기하면, 니가 부러워.”
“추석을 생각하이 머릿속엔 벌써 몇 가지 그림이 그려지고마.”
“그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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