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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세종에 살리라…‘두루뜰 동산’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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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3  13: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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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옛날부터 두루뜰은 살기 좋은 곳이었다.

한 번이라도 그곳에 가본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그곳에서는 아무리 일을 해도 힘들지 않았고, 무슨 씨앗이든 뿌리기만 하면 무럭무럭 자라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

어느 집에나 마당에는 곡식을 담은 가마니가 가득했고 광에는 먹을 것을 가득 담은 항아리로 넘쳐났다. 모든 집이 다 그래서, 문을 열어 놓고 자도 도둑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집에서 곡주를 내오니. 저 집에서 닭을 삶아오고
할아버지 생일 떡을 돌리는데 돌잔치 음식도 돌린다

서로 가져온 것을 나누어 먹으며 사이좋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너무 행복하니 따분하다.” 부족한 것이 없어 심심해서 죽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하나 둘 늘어가더니

“앞집의 아이는 머리만 나쁜 게 아니라 성질도 고약하다니까.”
“뒷집 아이는 돼지처럼 뚱뚱해서 그런지 멍청하기 그지없어.”

남의 흉을 보며 즐기는 일이 많아 졌고, 자연스럽게

“네가 나의 흉을 보았다며.”
“자네가 우리 아들 욕을 했다며.”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흉을 본 사람을 찾아다니며 따지는 일이 생겨나더니, 나중에는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는 일도 벌어졌다.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재미나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더니, 진짜 그런 모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싸움이 나면 말리기는커녕 구경하며 기뻐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오늘은 누가 안 싸우나.”

싸우는 것이 재미있다며, 싸움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다, 싸움이 났다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구경하며 기뻐했다. 그러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서로 원수처럼 미워하고, 까딱하면 싸우려 했다. 자연히 위아래를 알아보는 예의도 없어졌다.

“인간들이란 행복에 겨우면 저렇지. 지상에 낙원을 세우려 했던 내가 바보지.”

하늘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옥황상제가 크게 낙담한 얼굴을 하더니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인간들을 응징하기로 하고, 찬바람이 가득 찬 방의 북문을 열어젖혔다. 무거운 문이 덜커덩 열리는 순간 냉각된 바람이 쏟아져 내리는가 싶더니 마을이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한다.

봉우리의 나무들이 얼어붙고 마을의 나무와 풀도 얼어붙으며 하얗게 변한다.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던 소가 입을 벌린 체 얼어붙더니, 부엌 앞에서 어슬렁대던 강아지가 얼어붙고, 사랑방에서 술을 드시던 할아버지의 웃음소리도, 까르륵거리던 손자의 웃음소리도 얼어붙는다.

그날부터 해가 떠올라도 마을을 뒤덮은 얼음막에 튕겨나, 봄이 되어도 처마의 고드름은 굵어지고, 여름이 되어도 가을이 되어도 녹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이 와도 더 춥지도 않았고, 봄이 와도 추위가 풀리지 않았다.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을 하던 어린이들의 자취도 사라져 마을에는 얼어붙은 고요와 적막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삼년이 지나고 칠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마을을 뒤덮은 얼음막이 햇빛을 튕겨내고 있는데, 정오가 되자 갑자기 하늘의 해가 급격히 커지며

“번쩍! 번쩍!”

크게 번쩍거리며 세상을 밝혔다. 순간 마을을 뒤덮고 있던 얼음막이

“째앵”

하고 갈라지면서 녹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자, 처마에서 늘어져 땅에 박혔던 고드름이 녹고,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죽은 것 같았던 나뭇가지와 풀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르는 나비들이 펄럭이며 나타나고 새들이 하늘을 날며 노래한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이 플린 것이다.

“음매”

죽은 듯이 서있던 외양간의 소가 하품을 하며 울자,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사랑방의 할아버지가 창문을 열고 토방으로 내려오자, 손자가 마루로 기어 나온다.

“그런데, 아버님 우리 동네에 뭔가 큰 일이 있었나요.”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우던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있었지, 복에 겨운 인간들이 도리를 져버렸기 때문에 천벌이 내렸단다.”
“천벌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아버지가 장작불에 붉어진 얼굴을 돌리며 묻는다.

“그렇단다. 너는 착해서 몰랐겠지만, 사람들이 복에 겨워 범해서는 안 될 잘못을 저질러서 천벌을 받았단다. 앞으로는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단다.”

분수를 알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한 할아버지가 헛간에 걸어둔 괭이를 들고 텃밭에 들어가더니, 힘차게 땅을 파는데, 흙이 뒤집힌 자리에 보랏빛 할미꽃이 나타난다.

젊어서도 허리 굽은 할미꽃
늙어서도 고개 숙인 할미꽃

오만하지 않고 성실하라는 옥황상제의 뜻을 전하려는 듯이 할미꽃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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