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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세종에 살리라…‘이성계와 세종시’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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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2  09: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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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풍수란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의 줄임말로, 생명을 불어넣는 땅의 기운을 살핀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에도 퍼진 사상으로,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온다.

“어떤 풍수가 좋은가”

그것을 알려면 산하의 위치와 운기를 보아야 하는데, 산과 강이 잘 어울리는 곳에 자리를 잡아야 원하는 운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세종시는 국사봉을 중심으로 해서 원수산과 전월산으로 이어지는 좌측 줄기와 장군봉으로 내려뻗은 우측 줄기로 둘러싸인 평야에 자리하여, 아주 좋은 풍수란다.

이것은 무학대사가 조선의 도읍지를 계룡산 자락에서 찾을 때부터 이야기된 사실로, 신라 말의 승려 도선이 구축한 사상에 근거하는 전승이다.

전라도 영암에서 태어난 도선은 당나라에서 유학한 혜철한테 선학을 배운 다음에 전국을 떠돌며 도를 닦더니, 나중에는 직접 당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오더니 백두산에 올라, 뻗어나는 산맥을 살펴보고, 개성에 사는 용건이라는 사람에게 집터를 골라주면서

“내년에 태어나는 아이를 왕건이라고 부르면 터서 왕이 될 것이오.”

태어나는 아이가 왕이 될 것이라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예언을 했는데, 도선의 말대로 다음 해에 아이가 태어나, 왕건이라 이름 지었더니, 918년에 고려를 건국했다. 그 도선이

“500년 후에 생기는 조선은 계룡산 자락의 정씨에게 망한다.”

아직 왕건이 고려도 건국하지 않았는데, 이성계라는 인물이 나타나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우게 되는데, 그 조선은 정씨에게 망한다는 예언까지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성계가 새운 조선은 정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칙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라는 ‘하여가’로 정몽주의 뜻을 물었다. 그러자 정몽주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끝까지 고려에 충성하겠다는 ‘단심가’를 부르며,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다 이방원에게 살해되고 만다. 악연은 그것만이 아니다. 이방원은 조선의 개국 공신 정도전도 살해했는데, 그 정도전과 사이가 좋지 않은 스님이 무학대사였다. 이성계는 유학자 정도전과 스님 무학대사를 다 좋아했으나 둘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이성계와 무학이 얼마나 사이가 좋았는가를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무학대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성계가 싱긋 웃으며,
“대사님은 꼭 돼지 같아요.”
들으면 반드시 화를 낼만한 말을 했다. 그런데도 무학은 화를 내기는커녕 껄껄대며
“대왕님은 꼭 부처님 같습니다.”
아부하는 것과 같은 말을 했다. 그러자 이성계가 
“아니 돼지라는데 화도 안 납니까?”
웃으면서 다시 묻자 무학대사는
“화가 나다니요?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님이 눈에는 부처님이 보이지요”

라는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무슨 말이고 나눌 수 있는 둘의 관계였다. 이성계는 조선을 세우자 무학을 왕사로 모시고, 많은 것을 상의했는데, 개경이 아닌 다른 곳에 새 도읍지를 세우는 일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성계는 무학 대사와 같이 여러 곳을 돌다가 계룡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더니

“참으로 마음에 드는 풍수로다”
마음에 든다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계룡산은 동악이라는 금강산, 서악이라는 구월산, 남악이라는 지리산, 북악이라는 묘향산과 더불어 중악으로 불리는 명산이었다. 그때는 계룡산이 아닌 천태산이라고도 옹산이라고도 불렸다.

그 산을 둘러본 이성계가

“금계포란형 같기도 하고 비룡승천형 같기도 하니, 계룡으로 불러야겠다.”
계룡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성계는 계룡산 자락으로 도읍지를 옮기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하륜과 정도전 같은 유학자들이

“계룡산은 남쪽에 치우쳐 있어 도읍지로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강이 멀고 동북쪽이 막혀 있어서 적당하지 않습니다.”

풍수설을 근거로 반대하여, 공사를 시작한지 두 달 만에 중단되었다. 그리고
 
“삼각산 아래에 남향의 궁궐을 지어야 합니다.”

라고 주장하는 유학자들의 뜻에 따라 한양에 도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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