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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세종에 살리라…‘백제인과 담징’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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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0  09: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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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백제는 일본에 한자를 비롯한 많은 문화를 전해주었는데, 한자를 읽고 쓰는 일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것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백제인들은 왜 저렇게 똑똑할까?”

왜인들은 한자를 읽고 쓰는 백제인들을 신처럼 여겼다. 그리고 백제인을 모시고 농사짓는 법만이 아니라 무기를 만드는 법,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남보다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백제인을 보면 스승으로 모시려 했다.

나쁜 자들은 백제에 건너가 납치하기도 했다. 원래 왜인들은 원하는 모든 것이 있는 나라를 ‘한국’이라 쓰고 ‘카라쿠니’로 불렀는데,

“길에는 금은보화가 널려 있고, 먹을 것이 넘쳐나,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아프지도 않 고 늙지도 않는 나라.”

라로 여겼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가보고 싶어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왜에서 한국이 보인다.”

한국이 보이는 나라이기 때문에 왜가 좋은 나라라고 여겼다. 그래서 왜인들은 좋은 물건을 보면 백제의 물건이라고 말하고, 나쁜 물건은 백제의 물건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현재도 일본 사람들은 시시한 것을 보거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쿠다라 나이(백제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백제의 물건이 아니면 시시하듯이,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만큼 왜가 백제를 숭상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홍태가 건너갔으니, 어떠했겠는가. 소문을 들은 왜인들은 서로

“박사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홍태를 모시고 백제의 문화를 배우려 했다.
홍태는 왜인들에게 글과 그림을 지도하면서, 그들의 용기가 시원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흙으로 빚어서 말리거나, 낮은 온도에 구운 것인데 잘 깨쳤다. 물을 담아두면 문드러지기도 하고 손에 흙이 묻어나기도 했다.

보다 못한 홍태가 가마를 만들고, 세게 구워냈는데, 손가락으로 튕기면 “탱”하고 울렸다.

“마치 쇠처럼 단단하다!”

홍태가 구워낸 그릇을 만져본 왜인들은 쇠로 만든 것 같다며 ‘스에키’라 했다.

그랬다. 홍태가 구워낸 그릇은 쇠처럼 단단하여 잘 깨지지도 않고 흙이 묻어나는 일도 없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물을 담가두어도 흐물거리는 일이 없었다. 소문을 들은 왜인들이 앞을 다투어 ‘스에키’를 구하려했기 때문에, 그것을 손에 넣는 일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도 어려웠다.

어렵게 스에키를 구한 귀족이나 호족들도 아까워서 못쓰겠다며

“조상님께 바치는 제수품을 담는 제기로 써야겠다.”

결국은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제기로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의 왜는 불교를 믿어야 한다는 개화파와 토속신을 믿어야 한다는 수구파가 다투고 있었는데, 불교를 믿어야 한다는 쪽이 점점 강해졌다. 백제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박사님 부처님은 어떻게 생겼어요.”

불교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말을 들은 왜인들이 홍태에게 물었고, 홍태는 그때마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성덕태자의 유모가 찾아와서

“태자의 스승이 되어주세요.”

성덕태자에게 한문과 불법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때부터 홍태는 성덕태자를 지도하면서, 틈틈이 그림도 가르쳐 주었다. 그때였다.

“불교도를 죽이고, 부처는 불태우자.”

불교를 믿지 않는 자들이 난리를 일으켰다. 그러자 홍태가 사천왕상을 그려주었다. 성덕태자는 그것을 벽에 걸고 절을 하며

“난리를 진압하면 불법을 퍼트리겠습니다.”

불교를 믿겠다는 약속을 해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반란이 진압되었고, 성덕태자는 약속한대로 법륭사라는 절을 세우더니

“금당에 벽화를 그려주세요.”

홍테에게 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홍태는 주저하는 일도 없이

“담징에게 부탁하시지오.”

고구려에서 건너온 담징을 추천했다.
그는 고구려 사람인데도 백제에서 채색법은 물론 종이와 먹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연자방아와 같은 생활도구를 만드는 법도 배워 왔다. 홍태는 그런 박애정신이 마음에 들어 담징을 소개한 것이다.

성덕태자를 만난 담징은

“불교만이 아니라 유교의 오경도 같이 배워야 나라가 발전합니다.”

서슴없이 일본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 그런 홍태와 담징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성덕태자는 일본이 자랑하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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