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산하에 버려진 유해’
북한과 미군이 회담을 시작한 2018년에는 ‘미군유해 송환’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1950년 6월 25일에, 우리는 열강들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때 많은 군인이 전사했는데, 미군만 해도 3만 여명이었다.
그 유해의 일부가 아직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에 있는데, 그것을 돌려보낸다는 이야기다.
북한과 미국은 1988년 12월부터 회담을 시작하여 1990년에 5구를 송환했고, 1996년에는 북미가 공동으로 발굴할 것을 합의하여 2007년에 6구를 송환한 것을 포함하여, 2012년까지 436구의 유해를 송환했다.
그리고 2018년 금년에 북한이 약속한 핵폐기의 일환으로 55구를 송환했다.
그러자 예측 불허라는 미국대통령 트럼프가 “김 위원장에게 감사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나머지 5천여 명의 유해를 찾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가의 명을 받고 참전했다 전사했는데도 이국땅에 버려진 유해, 그래서 조국을 원망할지도 모르는 유해의 송환에 국가가 전력을 경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그것이 국가의 의무일진데, 그것에 국력을 경주하는 미국이 훌륭해 보이고 부럽다.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이 세력을 다툴 때의 일이다. 견훤이 왕건에게 보낸 사자가 죽자, 왕건은 자기가 사자를 죽인 것으로 견훤이 오해할 수 있다며
“시체를 관에 담아 돌려보내도록 하라.”
유해를 정중하게 돌려보냈다. 전쟁 중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6.25가 발발하여 69년이 지난 2018년에 추진되는 유해송환과는 적절한 비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전사한 자를 잘 대접해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후예의 도리다.
도리에 충실한 미국, 전사자들의 명예까지 존중하는 미국의 정신은 훌륭하여,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연기군 일원면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6.25 사변 때, 연기면 일원에서 우리의 군인과 경찰에게 살해되어 묻힌 유해의 일부란다.
자기 동네에서 자기들을 지켜준다고 믿었던 군인과 경찰에 의해 살해된 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와 그들이 신었던 고무신, 그리고 그들을 살해했던 탄피도 같이 발견되었다니,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더 놀라운 것은, 단 하나의 구덩이로 알았는데, 파보았더니
“암매장한 구덩이가 능선을 따라 길게 파져 있다.”
하나의 구덩이가 아니었다는 것이, 조사를 담당했던 박선주 충북대학교 명예교수의 말이다. 얼마나 많은 양민을 국가와 국민을 수호한다는 군경이 살해했는가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놀랄 일이 아니란다. 아름교 밑에서 더위를 피하던 노인들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난리가 끝난 뒤에, 산에 들어가 보면 여기저기 해골바가지가 뒹굴고 있었다니까.”
설마 그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이야기를, 노인들이 앞을 다투며 늘어놓는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발굴된 유해가 서로 다른 사연을 품고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에렸다.
“올 가을에는 혼인하게 되었다.”
겨우 장가들게 되었다며 기뻐하다 끌려가서 사살 당했을 수도 있고
“이 약을 달여 드시면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실 거야.”
병석에 누운 어머니의 약을 지어서 집으로 돌아가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자기를 지켜준다고 믿었던 자들에게 학살당했을 수도 있어
나라는 망했어도 강산은 그대로이니 성에 봄이 오고 초목이 우거졌구나.
시절을 느끼어 꽃에도 눈물을 뿌리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에도 놀래라 봉화가 오랫동안 연달아 피어오르니 집에서 온 편지가 만금처럼 귀하다.
중국의 두보라는 시인이 읊었다는 ‘춘망’이라는 시구가 저절로 생각났다.
나라를 지킨다는 안록산이라는 군인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난을 일으켜, 수 천만 명을 죽이고 국토는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두보는 그렇게 폐허가 된 산천을 바라보며 슬픈 심정을 읊었단다.
강원도 화천에는 무명용사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들의 한을 달래기 위해 조성했다는 비목공원이 있다. 처절한 전투가 전개되었던 백암산 자락에 근무하던 청년장교 한명희가, 잡초가 우거진 산에서 무명용사들의 것으로 보이는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하고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비목이라는 노랫말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새긴 노래비가 공원에 서있다.
나라를 수호하다 죽은 자들의 유골을 내팽개치는 일을 나라가 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더 안 될 일은 그들을 위로한다며, 또 다른 전쟁을 음모하는 정치군인이 나타나는 일이다.
이번에 발굴된 유해들은 자기 고장에서 살다가, 믿었던 군경한테 끌려가 살해되었다는 것인데, 우리는 그들의 신원을 알지 못한다.
사느라 바빴다지만 의무는 다하고 있는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영령들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