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당산의 옹달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수천과 향란을 태운 칠룡선이, 푸른 하늘을 비상하듯 물결을 헤치며 나가자, 하늘을 날던 파랑새들이 뒤따라가며

하늘의 정기를 받은 수천이 바다 건너의 여인국에
영원히 번성하는 씨를 뿌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네
이국의 슬기가 가득한 여인의 손을 잡고 귀향한다네

수천 부부의 귀향을 축하는 노래를 합창한다. 수천이 향란의 손을 잡고 칠룡선의 뱃머리에 서서

고향을 나서 이곳저곳을 주유하며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며
한 방울이 물이 모이며 길고긴 장강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하늘의 일월성신이 강산의 음양과 어울린다는 것도 알았노라

천하를 주유하며 터득한 지혜로 살기 좋은 고향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노래했다. 노래를 들은 용들이 수천이가 노래한 이상이 이루어질 것을 축하라도 하려는 듯, 경쾌하게 물길을 가르며 나아간다. 수천의 옆에 서서 앞날을 생각하던 향란도

방울에 담아가는 물로 전답을 적시고
구슬에 담아가는 불로 부엌을 지피고
호리병에 담은 물로 질병을 씻어내고
반지의 기운으로 새싹을 키워 내야지

배에 싣고 가는 보물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노래를 부르는데, 동해와 남해를 건너 목포 군산을 지난 칠룡선이 어느덧 금강을 거슬러 오른다. 수천이 감격에 젖은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데, 전월산 너머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마을에 왜구가 나타난 게로구나.”

검은 연기를 본 수천은 왜구가 나타난 것으로 판단하고 날아가려 했다. 순간 향란이 수천이의 팔을 잡아끌며

“여왕이 주신 구슬도 시험할 겸,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수천을 배에 남겨두고, 하늘로 날아오른 향란이, 둥근 구슬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순간 구슬에서 튕겨난 물방울이 햇빛에 반사하는 것 같더니, 폭포로 변하며 쏟아진다.

“하늘이 노하신 것 같다. 도망가자.”

방화하고 물건을 약탈하려던 왜구들이,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지자 겁을 먹고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그저 제자리 달리기만 되풀이된다.

그것을 본 향란이 허리에 찬 호리병을 아래로 향하고 세 번 흔들자, 땀까지 흘리며 발버둥 치던 왜구들이 호리병 속으로 빨려든다. 그것을 들고 칠룡선으로 돌아간 향란이

“제가 시집온 기념입니다.”

왜구들을 잡아넣은 호리병을 수천이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물에 떠내려갔다던 수천이 돌아왔다!”

수천이 돌아왔다며 야단법석이었다. 수천이 그런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당산에 오르자, 까마귀 한 마리가 상수리나무에 내려앉는다. 당산신이 수천이를 환영하러 날아온 것이다.

“앞으로는 제가 마을을 잘 지키겠습니다.”

수천은 향란과 같이 절을 올리고 마을로 내려와, 도망치다 다친 사람, 불에 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호리병의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아니 어찌 된 거야! 다친 곳이 나아버렸잖아유.”

신기하게도 아무리 트게 다친 상처라 해도, 물을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금시 아물었다. 순식간에 마을 사람들을 치료한 수천이 향란의 손을 잡고 당산 자락의 옹달샘 가에 서더니
“이곳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보금자리를 마련하겠다며 여왕한테 받은 창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나타난다. 둘은 그 집에 살며 초삿날마다 옹달샘의 물을 떠다 당산신에게 바쳤다. 그래서 그런지 당산 자락에는 가뭄이 드는 일도 홍수가 지는 일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랫마을에 사는 부인 하나가 찾아오더니

“제발 아이를 갖게 해주세요.”

혼인하여 7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없다며 회임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이야기를 들은 향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인을 아랫목에 눕힌 다음에 호리병에 떠온 옹달샘물 세 방울을 아랫배에 떨어뜨렸다. 그로부터 열달이 지난 어느날, 부인이 아이를 안고 찾아왔고, 마을에는

“여인국에서 보내주신 삼신할매다.”

향란이가 삼신할매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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