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초려공원’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정부종합청사의 고용노동부 앞을 흐르는 방축천을 건너서 걸으면 연양 초등학교와 유치원, 그리고 올망유치원으로 둘러싸인 동산에 이르는데, 그곳에 기와집이 자리하여, 하늘 높이 솟은 아파트들한테 받는 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호기심에 이끌려 다가가 보았더니, 호서 오현의 한 분이라는, 초려 이유태를 기념해서, 세종시가 2015년에 완공했다는 ‘초려공원’이다.

호서란 충청도의 다른 호칭으로, 동쪽의 영남과는 소백산맥, 남쪽의 호남과는 금강, 경기도와는 북쪽의 한남정맥을 경계로 한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명나라를 숭상하고 일본을 달랜다는 사대교린 정책을 폈다. 일본은 그런 조선의 은덕으로 먹고살면서도 임진년과 정유년에 침략하여 온갖 나쁜 짓을 다했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도 정묘년과 병자년에 침략하여 우리 선조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오랑캐와 쪽발이라고 부르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조선은 오랑캐와 쪽발이들에게 망신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당파싸움만 하느라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그런 가운데도 나라를 걱정했던 충청도의 다섯 분을 호서 오현이라고 하는데,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산천재 윤선거, 시남 유계, 초려 이유태를 말한다.

1607년에 태어난 이유태는 송시열과 송준길의 천거로 효종의 북벌계획에 참여했으나 훗날에는 송시열과 의견을 달리하는 등 사이가 좋지 않아 영변으로 귀양 가는 일도 있었다.

출세의 길을 열어준 송시열에게 미움을 받았다는 것은,

“배은망덕한 놈. 의리를 배반한 놈.”

이라는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관리의 판단이나 애국심은 의리나 인정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출세의 길을 열어준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 해서 사리의 판단도 없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정과 의리가 부닥칠 때는 나라의 이익에 따라야 한다.

그것이 도와주었던 은인에 대한 도리다. 그런 면에서 초려가 송시열과 뜻을 달리했다면, 그것은 기개 있는 행동으로 존경받아야 되는 일이다.

“우선 백성들이 먹고 살아야 합니다.”

초려는 왜란과 호란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민생이 도탄에 빠진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백성을 구하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나라를 개혁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런 의견은 수용되지 않았다. 초려는 백성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 백성들을 살기 어렵게 하면서 양반들만 잘 먹고 잘 사는 정책은 고쳐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반들도 세금을 내고 군대도 가야 하는데, 그것을 양반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다. 양반들은 그런 일을 반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런 말을 한 사람을 어떻게든 몰아내거나 죽이려 했다. 초려가 영변으로 귀양 간 것도 그런 면에서 찾아야 한다.

초려가 말한 대로 민생을 구제하고 국가의 기강을 확립했으면 조선은 크게 발전했을 것이고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양반들은 날만 새면

“저놈들이 역적이다.”

반대파의 약점을 잡아서 쫓아내고,

“알고 보니 이놈들이 역적이네.”

나중에는 같은 편들끼리도 물고 뜯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것을 보면

“오랑캐의 나라를 정벌하여 조선의 기개를 높이자.”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간 일이 있는 효종이 오랑캐의 나라를 정벌하겠다고 나선 일은 민족의 기개를 세우는 일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효종의 북벌정책이 성공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면에서 보면, 청나라를 정벌하려면 먼저 나라를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기해봉사’로 정리하여, 효종에게 바친 이규태야 말로 훌륭하신 분이다.

‘초려역사공원’에서 방축천을 건넌 곳에는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으로 길게 자리 잡은 정부청사가 있다.

나랏일을 하는 인물들이 몰려있는 곳인데, 혹시라도 탐욕스런 자들이 던져주는 뇌물이나 바라는 자가 있다면, 필히 초려공원에 들려야한다. 공원을 거닐다보면 민족과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며 공부하던 때의 초심을 되찾을 것이다.

초려란 볏짚 같은 것으로 지붕을 이은 가옥을 말하는데, 세상살이에 능하지 못하여, 먹고사는 것이 곤란한 자가 사는 집을 말하기도 하지만, 높은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사람이 거처하는 곳을 말하기도 한다.

이유태가 그런 의미의 초려를 호로 정했다는 것은, 민족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컸다는 것이다.초려하면 생각나는 것이 “삼국지”의 유비와 제갈공명이다. 유비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곳에서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으며

“나라에 보답하고 백성을 돕자.”

도원결의를 했으나 조조와의 전투에서 번번히 패하자, 초려에 산다는 제갈공명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유비가 찾아갈 때마다 초려를 비우며 피했다. 그런데도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대리고 세 번이나 찾아갔다.

즉 ‘삼고초려’를 해서 제갈공명의 뜻을 얻어, 그의 뛰어난 지혜로 조조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청운의 꿈을 꾸는 자들은 물론, 그 부모나 친척들도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면 나라를 위해서 일하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정작 시험에 합격하여 권력을 쥐게 되면, 고래등 같은 집에서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살려고 한다.

그러면서 국민들을 속이는 일도 꺼려하지 않는다. 심한자들은 돈만 준다면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도 협조한다. 그런 짓이 얼마나 나쁜가를 알려면 초려공원에 들려야 한다.

그러면 주변에 자리 잡은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 초려의 슬기와 이상을 물려받을 것 같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려앉으며, 눈을 비비며 책을 읽던 일만이 아니라 이미 잊고 있었던 이상도 생각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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