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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세종에 살리라…‘정감록’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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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9  0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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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뜻에 따라 계룡산에 도읍을 세우려 했으나,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고 남산을 진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정도전의 뜻에 따라 한양에 도읍하기로 했다.

그런데 조선은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이방원이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개국공신 정도전도 왕자의 난에 개입했다며 살해했고, 나쁜 왕은 바꾸어야 한다는 정여립도 역모죄로 죽이고, 이인좌난에 참여한 정희량도 처단했다. 조선이 정씨를 박해한다고 볼 수 있는 일들이었다.

조선은 양반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재주가 없어도 벼슬을 하고, 나쁜 짓을 해도 벌을 받지 않는 세상이었다. 양반은 백성들이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으며, 백성들이 글을 모른다며 함부로 다루었다. 그러다 보니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백성들은

“정도령이 계룡산에 새 세상을 연다네,”

조선이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생긴다는 소문을 희망으로 삼기도 했다.

백성들만이 아니다. 권력을 빼앗기고 차별 받는 양반들도, 조금 똑똑하다는 정씨만 보면
 
“당신이 정도령 같으니 우리와 같이 새 세상을 엽시다.”

반란을 일으키자고 꼬드겼다. 그러면 왕이나 권력을 휘두리는 양반들이 정신을 차리고 좋은 정치를 해야 했다. 그런데 양반들은 2018년의 국회의원들처럼 게으름을 피우고 땡강만 부리다, 왜놈들이 일으킨 왜란으로 백성들을 고생시키더니, 그것도 모자랐던지, 오랑캐들이 쳐들어오는 호란까지 겪게 했다. 그래서 믿을 곳이 없는 백성들은

“빨리 정도령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정도령이 새 세상을 열어줄 날만 학수고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얄궂게도 바로 그때, 지금의 대만땅에 정성공이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를 치고 명나라를 재건하겠다는 정씨였다. 이미 망해 없어진 명을 숭상하는 것은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도 이미 망한 명을 숭상하고 청을 무시하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겪었다. 그렇게 왜놈과 오랑케한테 혼이 났던 백성들은 모이기만 하면

“정도령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다네.”

 정도령이 나타나 새로운 새상을 열어주는 날만 기다렸다. 나라와 관리를 믿지 못하는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이고 희망이었다. 그런 소망은, 막연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살아가는 의지를 잃지않게 한다. 

정작 조선은 정도령이 아닌 일본에게 망하고 만다.
일본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조선의 왕과 관리, 무능하면서 탐욕스러운 관리들이 판치는 조선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우리말을 쓰면 처벌했고, 우리나라 태극기를 흔들면 감옥에 가두워버렸다. 대신에 일본말로

“조선놈은 팽이 같아서 맞아야 말을 듣는다.”

조선을 욕하는 조선인은 호의호식하며 잘 살게 했다. 그때도 사람들은

“정도령이 새 세상을 연다고 하니 참고 기다리세.”

정도령을 의지하며 버텼다. 그러는 가운데 해방이 되자, 정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은근히 기대 했을텐데, 정권을 잡은 것은 정씨가 아니었다. 이후로 동족이 서로 죽이는 난리가 나고, 군인들이 총을 쏘아대는 세상이 되자, 또 정도령 이야기가 나오고, 

“정감록의 도령은 정씨가 아니라 전씨래.”

새로운 세상을 세운다는 정도령이 정씨가 아니라 전씨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독재자 전씨 가 퍼트린 유언비언지, 아부하는 모리배들이 퍼트린 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정도령 이야기가 20세기 말에도 위세를 떨치더니, 나중에는 정씨성을 가진 사업가가

“내가 정감록의 정도령이야.”

정도령을 자처하며, 전국민이 원하는 집을, 반값에 지어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대선에 출마했다. 그것 역시 본인이 말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정도령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에 충청권으로 수도를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정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당선된 대통령은 약속대로 충청도로 수도를 이전하는 계획을 진행했는데, 그것은 이미 1970년대의 대통령이 계획하기도 했던 일이다.  

이성계가 1393년에 계룡산 자락을 도읍지를 세우려는 공사를 진행하다 하륜 일파의 반대로 중지되었는데, 그로부터 딱 칠백년이 지난 2003년에도, 하륜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맹렬히 반대하며 헌법재판소의 뜻을 묻게 되었고,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은 하륜의 피를 이어받았는지 2004년 10월에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이 존재한다.”

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천지조화는 거스릴 수 없는 일인지, 계룡산을 바라보는 곳에 2012년에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여 대한민국이 중심이 되는 천하의 완성을 목적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세종시의 산천을 걸어본 사람들 중에는

“이곳이야 말로 금계포란형이로군.”

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국사봉에 올라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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