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신석기 시대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이 빙하기의 추위였는데, 추위가 풀린 이유도 잘 알지 못한다. 어쨌든 날씨가 따듯해지자 사라졌던 초원이 다시 생기고, 새로 생겨난 동물들이 뛰어다녔다. 이전과 달리 작고 빠른 것들이었다. 물 속에도 고기들이 헤엄치고 조개들이 바닥을 헤집으며 논다.동굴에서 나온 인간들은 좋아하는 사람과 짝을 지어, 물가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었다. 남자는 밖에서 먹을 것을 구해오고 여자는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돌본다.조선대륙은 동·서·남이 바다에 접하고
3 구석기 시대의 조선대륙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인류는 호기심이 많아 여러차례 탈바꿈을 하는데,꾸부정하게 걷는 단계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단계허리를 펴고 꼿꼿하게 걷는 단계를 거쳐, 돌을 깨서 일으킨 불을 사용하는 슬기로운 인간(호모샤피엔스)으로 탈바꿈하더니, 결국에는 지금 우리와 지능이 같은 슬기롭고 슬기로운 인간(호모샤피엔스 샤피엔스)으로 진화했다. 호기심이 왕성한 그들은 새로운 것을 보면만져 보고, 갈라보고, 맞춰보고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또 사람을 만나면말을 걸어보고, 힘도
1. 금강 전라북도 장수군 뜸봉샘에서 퐁퐁 솟아난 물방울이 진안, 무주, 금산, 영동, 옥천, 대전, 신탄진, 부강, 세종, 공주, 부여, 강경을 지나 장항과 군산 사이를 빠져 서해로 흘러간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일이다. 금강은 다른 강들과 달리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구리 향천, 정자천, 남대천, 봉황천, 송천, 보청천들을 보듬어 안고 북서로 흐르다 세종시 부강에서 머리를 북서로 돌려 충청북도 진천, 청주를 거쳐온 미호천을 합강에서 맞이하여 공주, 부여로 흐른다는 것도 잘 아는 일이다.길이
금남면 장재리의 아랫동네에서 윗동네로 올라가는 길목에 밭이 있는데, 그 옆에 ‘개구리형 무덤’이라는 묘가 있다. 그렇게 부르는 데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옛날에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유명한 지관이 있었다. 그가 짚은 곳에 묘를 쓰면“과거에 열 번이나 떨어진 낙방거사가 장원급제를 했다네,”“밥도 못 먹던 가난뱅이가 만석꾼이 되었다네,”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났다.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묏자리를 부탁하려 했으나 도저히 만날 수가 없단다. 그 지관은 간혹 명당을 잡아주고는“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점지해 준 것입니
옛날에 장재리에 자린고비 하나가 살고 있었다. 절약하고 또 절약하면서 어찌나 열심히 일하는지, 재산이 나날이 불어났다. 그래서 그런지, 가난한 사람을 보면“에이, 게으른 놈”게을러서 못사는 것이라며 아주 싫어했다.그런데 하필이면 아끼는 딸 하나가 말도 못하게 가난한 총각을 좋아하여, 혼인하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자린고비는 화를 내며 반대했으나 딸이 듣지 않아, 딸에게 혼수품 하나 해주지 않았다.그런 자리고비였지만 조상을 모시는 명당을 찾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어떤 지관이 신통하다네.”유명하다는 지관의 소문만 들으면 돈을 싸
‘연기군지’가 전하는 전설들을 읽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다.전월산의 버드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괴화산 자락 여인들이 바람난다는 전설이 대표적이다. 그 같은 것을 보면“전월산과 괴화산 자락의 주민들을 이간질시키려는 전설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금강을 사이에 둔 양쪽 주민들을 다투게 하는 일로 이득을 보려는 세력이 만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연기군지’을 편찬한 분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전하는 기록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연기대첩연구’는 더 한다.옛날에 오랑캐들이 나타나 닥치는 대로
괴화산에는 ‘금전굴’이라는 전설도 있다.괴화산 자락에 마음이 착하여 선동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착한데다 부지런하여 나날이 재산이 불어났다. 하루는 건너 마을에 사는 형이 선동이를 찾아가서“동생 내가 100석짜리 논을 사는데 99석만 빌려 주게.”부모의 유산도 독차지했던 형이 100석짜리 논을 사겠다며 99석을 빌려 달랬다. 그저 달라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선동은“축하드립니다.”형이 요구한대로 빌려드렸다.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형을 도울 수 있어 행복하다며, 다음날도 밭에 나가서 열심히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
종시 연기군 금남면의 반곡리·석삼리·장재리·석교리가 둘러싼 곳에 201m의 괴화산이 있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월산과 마주하는 산이다. 밤에도 초롱을 걸어 놓은 것처럼 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오는 명당을 초롱을 걸어놓은 것 같다는 괘등형(掛燈形) 명당이라고 하는데, 괴화산의 모양이 그렇단다.그것만이 아니다. 과화산에는 많은 금이 묻혀있단다. 그래서 산자락에 사는 주민들은 매년 10월 1일이면 맛있는 음식들을 차려 놓고“우리들에게 복을 내려주세요.”절을 하면 소원을 빌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가 행복했
신무산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북으로 향하다 부용산 자락에 이르자“서남에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자”홍익의 정신으로 방향을 바꾸어 장남평야를 적시며 흐르기 시작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집을 짓고 살더니 홍수를 막겠다며 토성을 쌓아 올렸다. 그리고 나성고개 나성재 등으로 부르며 금강에 오가더니 한자를 빌려다 나성(羅城)으로 표기했다.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그곳에 고려의 충신 임난수의 덕을 기리는 독락정이 금강을 내려다본다.옛날에는 충청남도의 문화재였으나, 2012년 7월 1일에 세종특별자치시의 출범에 따라 지금은 세종특별자치시의
조국을 지키려는 애국지사들의 의병활동이 들불처럼 번졌으나 관리들의 무능과 양반들의 탐욕으로 조선은 망하고 만다. 우리가 문명과 문화를 전해주고 일러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옛날에는 풍신수길이 조총을 들고 나타나 금수강산을 쑥대밭으로 만들더니, 1910년에는 이완용 같은 친일파를 앞세워 조선을 집어삼켰다.임금과 관리들을 믿은 백성들은 왜놈들한테 모든 것을 빼앗겨 살아갈 길이 없어, 만주로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그때 일본으로 건너간 동포의 후손들을 재일동포라 한다.재일동포는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민단과 북한을 지지하는 조총련으로
의병장 임대수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고 몸이 튼튼하여 못하는 것이 없었다. 예의가 발라 동내 어른들을 만나면“진지 드셨습니까.”바르게 인사하고 무거운 짊이라도 들고 계시면이고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나는 젊었거늘 돌이라도 무거울까늙기도 서럽거늘 짐조차 어이 지실까낭랑한 목소리로 시조를 읊으며 짐을 날라 드렸다.그뿐 만이 아니다. 친구들을 돕는 일도 좋아했다. 같이 뒷산에라도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다리가 아프다는 친구가 있기라도 하면 집까지 업어다 주기도 했다.“장비의 몸을 한 유비다.”동네 어른들은 임대수를 곧잘 ‘삼국지’에
임대수 열사의 공덕비를 열심히 읽던 학생 하나가“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떵떵 거린다면서요.”옆에서 부동자세로 공적비를 응시하는 선생님에게 묻는다. 선생님이 고개를 돌려 학생을 보는데 씁쓸한 표정이다.“어느 일간지가 독립운동가의 후손 115명의 수입을 조사했더니 200만원 미만이 43.0%로 가장 많았고, 100만원 미만이 20.9%, 50만원 미만이 10.3%였단다.”선생은 신문에 난 기사를 학생에게 설명하더니. 독락정 뒤로 돌아가는데 외로워보였다.“혹시. 의병장의 후손이 아닐까?”그런 생각에 뒤따라 가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하는데도 조정의 관리들은 파벌 싸움만 하고 있었다.나라가 망하든 말든 백성들은 굶어주건 말건 관심이 없었다. 그야말로 탐관오리들의 천국이었다. 참다못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 동학농민운동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살려고 일어난 것이다.그런데 조선의 임금님은 아버지와 황후의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여, 일본군대가 멋대로 동학혁명군과 싸우겠다며 들어오는 것도 막지 못했다. 그래서 농민군은 무능한 관군만이 아니라 최신무기로 무장한 왜군과도 싸워야 했다.맨손이나 마찬가지인 농민군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지만, 농민군들
금강의 도도한 물줄기를 내려다보는 곳에, 고려의 망국을 애통해 하며 낙향하다 전월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는 임난수의 덕을 기리는 독락정이 있다.일대를 ‘나릿재 역사공원’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지금은 ‘나성동 독락정 역사공원’이라 한다.뒤로는 세계의 중심을 실현하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라 살벌하기도 하지만, 의병장 임대수의 공적비가 서있어 숙연하다.만주벌판을 달리던 독립투사들의 심정으로 미래로 설계하는 자에게 방향을 알려 주는 것 같다.의병장 임대수는 꺼져가는 조국을 지키려고 항거했던 애국지사이다.그로 인해 연기 지역에서는 일본에 항거
독락정의 오른쪽에 의병장 임대수의 공적비가 있다.임대수가 명치제국의 침략에 맞서다 순국하신 의미를 보다 잘 알려면 ‘명치’라는 연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연호란 군주가 바뀌는 해부터 사용하는 것으로 우리는 ‘서기’를 사용한다. 왕조에서는 ‘무슨 왕 몇 년’이라 했다.중국은 여러 왕들을 거느리는 최고의 왕을 ‘황제’라 했기 때문에. 황제가 즉위할 때마다 연호를 새로 정하고, 모든 왕들은 그것을 사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역을 꾀한다는 의심을 받아,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한다.그런데 우리나라 왕 중에서도 연호를 사용한 왕이 있었다
옛날에는 붉은 복사꽃이 지고나 서야 하얀 배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은 복숭아꽃과 배꽃이 같이 피며 세상을 향기롭게 한다.“기후가 변한 탓이야.”옛날에 비해 따뜻해졌다며 온난화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기는 동해에서 잡히던 오징어가 서해에서 잡히는가 하면 남쪽에서만 열리던 감을 북방에서도 따먹을 수 있다지 않는가. 그것뿐인가. 아열대 작물인 파파야, 망고, 바나나 같은 것들을 중부지역에서 재배한다고 자랑하는 소리도 심심찮게 듣는다.조치원에는 원래 꽃이 많다.그래서 새들이 즐겨서 둥지를 틀고, 한 번 들린 신
2019년 4월에 봄의 속삭임에 이끌려 집을 나선 자가 조치원의 오봉산 자락이나 고복 저수지 근처를 돌아다녔다면산천초목이 울긋불긋 청춘 홍안 싱긋벙긋분홍빛 봄바람에 둥실 둥실 노잔다 봄이다 봄이다얼쑤 얼수 얼쑤 얼수 봄이다 봄이다 얼싸 좋다 얼싸 좋다저 산 꾀꼬리 꾀꼴이 산 쑥국새 쑥국봄이로구나 아 봄이로구나 꽃 시절 봄이로구나앵화 도화가 봉울봉울 온갖 잡새 날아든다정다운 봄바람에 어깨춤이 절로 난다얼쑤 얼수 얼쑤 얼수 봄이다 봄이다 얼싸 좋다 얼싸 좋다총각 얼굴이 벙글 아가씨 입이 벙긋봄이로구나 아 봄이로구나 꽃 시절 봄이로구나그
부용 마을 입구에는 150년이나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서있고, 은행나무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덕대라는 원시적 장례식의 유래가 적혀 있다.장승 옆에 큰 소나무가 있었는데 아이가 죽으면 가마니에 싸서 매달아 놓는 것을 덕대라 한다. 돌림병으로 죽은 아이를 매달아 놓은 것을 새가 쪼아, 병을 멀리 날려 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원래 덕대란 비바람이나 들짐승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해 널이나 막대기를 나뭇가지나 기둥 사이에 얹어 만든 선반에, 사체를 올려놓고 용마름으로 덮는 장례였다.사체를 선반에 올려놓는 것은 짐승들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이고,
부용마을 어귀에는 150년이나 살았다는 은행나무가 서있다.마을 사람들이 은행 나무아래에 앉아서 부용을 장승배기라고도 부른다는 이야기를 한다.언뜻 들으면 은행나무와 관계없는 것으로 들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마을을 수호한다는 면에서 둘은 같은 역할을 한다. 둘 다 마을의 번영을 비는 사람들의 뜻을 신에게 전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신들을 두려워하고 숭배한다. 그 중에서도 하늘에 산다는 천신을 특별히 숭배했다. 폭풍이 불고 가뭄이 드는 것은 물론 풍년이나 흉년도 천신의 조화로 여겼다.그래서 자신들과 비교가 안 되는 신의
예나 지금이나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가끔가다“공부가 제일 재미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재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그런데 부모들은 왜 그렇게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성화일까. 제일 사랑한다는 자식이 제일 싫어한다는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공부를 잘 해야 성공하고, 성공해야 남보다 잘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그런데 “잘 사는 것이 무엇이오.”라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남들과 같이 행복하게 사는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앉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