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개구리형 명당’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금남면 장재리의 아랫동네에서 윗동네로 올라가는 길목에 밭이 있는데, 그 옆에 ‘개구리형 무덤’이라는 묘가 있다. 그렇게 부르는 데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옛날에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유명한 지관이 있었다. 그가 짚은 곳에 묘를 쓰면

“과거에 열 번이나 떨어진 낙방거사가 장원급제를 했다네,”
“밥도 못 먹던 가난뱅이가 만석꾼이 되었다네,”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묏자리를 부탁하려 했으나 도저히 만날 수가 없단다. 그 지관은 간혹 명당을 잡아주고는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점지해 준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었다는 말을 하고, 노자 몇 푼을 받아서 떠나는데, 어디로 갔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고, 항상 빈털터리로, 굶고 사는 일이 다반사였다. 누군가가 왜 그렇게 가난하게 사느냐고 물었더니

“배가 부르면 아무것도 안 보여.”

주머니에 돈이 들어있으면 세상 이치를 알 수 없게 된다는데, 그것이 팔자라며 웃더란다.

어느 날 그 지관이 괴화산 자락을 지나다, 산의 정기에 끌려 자기도 모르게, 오르락내리락 거리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먹지 못하여 지친 것이다.

지관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등에 붙은 배를 쓰다듬는데, 농부 하나가 밭두렁에 앉아서 새참을 먹고 있었다. 허기를 참지 못한 지관이

“한 숟갈만 주세요.”

구걸했다. 그러자 농부는

“전부 드세요.”

손에 든 숟가락을 옷자락에 싹싹 닦아서 건네주었다. 지관은 숟가락은 쳐다보지도 않고 손으로 집어서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러다 허기가 없어지자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밭 아래의 늪지를 가리키며

“저곳에 조상의 묘를 이장하시지요.”

누가 보아도 묘를 쓰면 안 될 것 같은 늪지에 묘를 쓰라는 말을 했다.

그가 유명한 지관이라는 것을 알 수 없는 농부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길손은

“이곳에 묘를 쓰고 멀리 떠나세요. 벌초나 성묘는 물론 제사도 남에게 부탁하세요. 그러면 삼년 안에 부자가 될 것이오,”

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농부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조상의 묘에 제사도 지내지 말라니 말이 되나?”
화를 내며 길손을 바라보는데, 어찌 된 일인가?

길손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농부는 그것이 신기하여, 집안사람들이 반대하는데도, 그곳에 묘를 썼다.

그리고 멀리 이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후에는 좋은 일만 생긴다. 텃밭을 갈다가 금덩이를 발견하는가 하면, 산에 가서는 산삼을 캐는 등 좋은 일만 계속해서 생긴다.

농부는 계속되는 행운에 놀라, 용하다는 지관을 모셔다 조상의 묘를 살펴보게 했더니, 묘를 본 지관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속에 있어야 영험이 나타나는 개구리형 명당입니다. 앞으로 더 번창할 것입니다. 다만 그곳은 개구리가 올챙이를 잡아먹는 형상입니다. 그래서 자손들이 직접 성묘를 하면 안 됩니다. 이런 명당을 알아본 분이야 말로 하늘이 내린 지관입니다”

천하에 드문 명당이라고 극구 칭송했다.

그 말은 들은 후손들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직접 성묘도 할 수 없게 되자, 괴화산에 올라 묘가 있는 쪽을 향해 절을 했다.

그런데 괴화산 자락 어딘가에는 그다지 마음씨 좋지 않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부지런히 일하기보다는 게으른 그는 남이 잘 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이고 배 아파.”
화를 내며 얼굴을 붉힌다.

그러면서도 복을 받고 싶다면 명당에 조상을 모시려 했다. 아예 조상의 유골을 방 윗목에 놓아두고 명당이라는 말만 들으면 그곳에 묻었다. 그러고도

“저곳이 명당이라네.”
더 좋은 명당이라는 말을 들으면 또 파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번엔 진짜로 명단에 모셨다.”
아주 좋은 명당에 조상을 모셨다며, 입에 대지 않던 술까지 마시고 하늘에 뜬 달을 보며 흥얼거렸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는 것이 매우.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휘청대다가 그만 도랑에 빠지고 말았는데, 술이 취해서 그런지

“아늑하기 그지없구나.”

흥얼거릴 뿐, 일어서질 않는다. 그리고 다음날 길을 가던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물위에 개구리 모양으로 엎어져 있었다.

“후손은 복을 받겠구먼.”
그런 말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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