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오가낭’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세종시에는 오가낭뜰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공원이 있다. 그런데 오가낭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을 만난 일이 없다.

오(吳)씨의 사당을 지키는 다섯 사람을 의미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백제에 속했던 이 지역에는 전(全) 목(木) 연(燕) 진(眞)씨가 많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리가 따른다. 바람이 선선한 여름밤에 훤하게 비춰주는 달빛을 받으며, 오가낭뜰을 둘러싼 숲길 걷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숲에서 이런 소리가 들린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의 하늘나라에,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악귀가 살고 있었다. 세상에 역병을 퍼뜨리거나 작물이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며 다투게 하는 일을 좋아하는 악귀였다. 그 악귀가 하루는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더니,

“아니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니!”

폭포 아래에서 목욕하는 예쁜 여인을 발견하자, 즉시 내려가 괴롭혔다. 그 이후에도 틈만 나면 내려가서, 울면서 저항하는 여인을 못살게 굴었는데, 그러는 사이에 여인은 해마다 아이를 낳았다. 태어난 아이들은 악귀의 피를 받아서 그런지 머리는 좋은데 성질이 고약했다.

첫째아들 목고는 체구가 작은데도 힘이 셌다. 거기다 거짓말지 잘해, 속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어찌나 달콤하게 속이는지 속고서도 속은 줄을 모를 정도였다.

“여러분을 황금이 굴러다니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목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멀고먼 바닷가로 데려가더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해적들에게 팔아넘기고, 그 돈으로 고래등 같은 집을 짓고 살았다.

둘째아들 문어는 때려잡은 짐승의 피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어떤 때는 산짐승의 피를 빨아먹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피냄새가 난다며 보기만 하면 도망치는데, 문어는 오히려 그것이 좋다며 낄낄거린다.

셋째아들 다수는 잔꾀가 많아, 머리가 비상하다는 형들도 속는다.

설날 아침에 똑 같은 복돈을 받아도, 반나절만 지나면 모두 다수의 손에 들어갈 정도로, 남의 것을 훔치거나 뻬앗는 일에 능했다. 자기를 믿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며 속삭이는데, 속지 않는 자가 없었다.

넷째딸 미숙은 오라버니들과 달리 앳되고 귀여웠다. 말 수도 적어 사람들은 귀엽다며 용돈까지 주며 칭송했다. 그때마다 미숙은

“저는 아무런 욕심도 없답니다.”

새초롬한 말투로 선물을 사양한다. 사람들은 그런 미숙이를 또 칭찬한다. 그런데 미숙이와 말을 나누고 집에 돌아온 자들은 돈쌈지가 없어졌다며 허둥대는데, 바로 그 시각의 미숙은

“돈쌈지 수집이 나의 특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벽장에 쌓아둔 돈쌈지에 새로 훔쳐온 것을 얹으며 호호거린다. 그런 누이의 주머니를 멋대로 뒤져다 써대는 자가 다섯째 홍표다.

홍표는 항상 주머니에 독초를 넣고 다니는데, 그것을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흔들어대면 뛰어다니던 짐승은 물론 싱싱하던 초목도 시들고 만다.

 홍표는 누나의 돈을 훔쳐다 쓰는 것이 심심하다며, 언젠가 부터는,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술을 사주겠다며 주막으로 유인하여, 독을 탄 술을 먹이고 혼절하면 돈을 훔쳤다. 그래서 돈이 많은데도 굶은 사람을 보아도

“에이 재수 없어!”

도와주기는커녕 벌컥 화를 내며 침까지 뱉는다.

그래서 오남매의 집은 나날이 부자가 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더 살기 어려워졌다.

아무리 일을 해도 먹고 살기 힘들었다. 오남매는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이 즐겁다며, 먹을 것이 썩어나도 나누어 주지 않는다.

나눠주기는커녕 제삿날 조상님께 밥을 지어서 바치겠다고 아껴두는 식량까지 빼앗아 갔다.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짐승처럼 부려먹다가도 병이라도 들면

“네가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즉시 내쫓았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는 배고프다고 우는 소리, 억울해서 못살겠다고 하소연하는 소리, 이곳저곳이 절리고 쑤셔서 못살겠다고 신음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오남매의 횡포는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구나.”

보다 못한 하늘나라의 옥황상제가 크게 한숨을 쉬더니 오남매를, 쉬지 않고 빙빙 도는 불가마 속에 집어넣고 말았다. 하늘의 심판이 내린 것이다. 불가마는 10년이 지나 100년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불가마에 떨어진 5남매는 악을 쓰며 욕을 해대더니, 300년이 지나자 회개했다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옥황상제는 200년을 더 돌린 다음에

“너희들을 영원히 순화시켜주는 땅으로 보내 주겠다.”

500년이 되자,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좋은 사람으로 개과천선 시켜준다는 산자락에 떨어뜨렸다.
 그렇게 해서 산자락에 떨어진 오남매는 나무와 풀로 변하여,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고, 짐승들을 살찌게 해준단다. 나는 “설마”하며 귀를 길울였더니, 숲이 계속 흔들거리며

“하늘에서 순화의 땅으로 내려온 오남매는 나날이 순화되어서, 나쁜 짓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는커녕, 자연과 인류를 위하는 일만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서 지낸다네”

라는 말을 들려준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오가낭 자락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좋은 머리로 인류에 이바지 하는 일이 많을 것이라는 예감이 꾸역꾸역 몰려온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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