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부용낭자’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저게 뭐야, 빨래 아냐!”

강물에 흘러오는 빨래를 본 현인이 강물에 뛰어 들어 집어 들어 올리자, 길게 늘어지는 빨래에서 “좌악”하고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현인이 그것을 쥐어짜며 올려다보는데.

하늘에서 내린 햇빛이 금강에 튕겨 오르는데
구름에 달 가듯 유랑하는 내님이 이제 오시네.

낭자 하나가 물가에서 노래하며 방망이질을 하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낭랑한지 하늘을 날던 새가 맴돌고 강물을 거슬러 오르던 물고기가 뛰어오른다. 노래에 취한 현인이 멍하고 서있는데, 하늘에서 비춘 햇살이 하얗게 낭자의 허벅지에 반사한다.

“빨리 가져오지 않고 뭐하세요. 현인님.”

어떻게 알았는지, 낭자가 현인의 이름을 부르며 손짓한다. 놀라서 정신을 차린 현인이 첨벙대며 올라가 빨래를 건네주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를 따라오세요.”

현인더러 따라오라며 앞장선다.

“이거 어찌 된 거야?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다니, 사람이 아니라 귀신인가? 저렇게 아름다운 귀신도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뒤를 따라갔더니, 고래 등 같은 기와집으로 들어간 낭자가

“나 혼자 사는 집이니, 현인님은 아래채를 쓰도록 하세요.”

마당에 엉거주춤 서있는 현인이 지낼 곳이라며 아래채로 안내하는데, 무엇에 홀린 것 같으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용왕의 딸인가?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님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방에 들어선 현인이 괴나리봇짐을 내려놓자 “쩔그렁”하는 소리가 난다.

그 동안 3년여에 걸쳐 유랑하는 동안에도 꽤나 많은 금덩이가 단지에서 나온 모양이다. 그날부터 현인은 낭자를 도우며 지내는데, 어떤 일을 해도 재미있고, 아무리 일을 해도 힘들지 않았다.

때가 되면 밥상이 차려져 있는데, 그때까지 본 일도 없고 먹어본 일도 없는 음식들로, 이것을 먹어도 맛있고 저것을 먹어도 맛있어, 매일 매일이 꿈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들에 나가 밭이나 일굴 생각으로 집을 나서려는데,

“오늘은 일을 하지 마시고,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버리고 오세요.”

낭자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하고 방문을 닫는다. 그 말을 들은 현인은 다시 방에 들어가 장롱 깊은 곳에서 단지를 꺼내, 해가 중천을 지날 때까지 보고 또 보더니, 그것을 집어넣은 괴나리봇짐을 지고 집을 나서는데, 다시 유랑의 길을 떠난 것인지, 보름날마다 금덩이가 나오는 단지를 버리러 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땅거미가 져도 돌아오지 않던 현인이, 둥근 달이 검은 지붕을 더 검게 비출 때가 되어서야 대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리고 낭자의 방문 앞에 섰다. 낭자의 말대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단지, 앞으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단지를 버리고 온 사실을 보고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낭자가 보이지 않았다. 놀란 현인이 이곳저곳을 찾아보았으나, 집안 그 어디에도 없었다. 현인이 허둥대며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첨범! 휘이익! 쌔앵!”

하는 소리, 무언가가 물에 뛰어들었다 솟아올라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더니, 길고 검은 물체가 하늘로 치솟아 날아다니더니, 지붕 위로 날아와 세 바퀴 선회한다. 그리고 현인이 서있는 마당에 내리는데, 온몸이 물에 젖은 낭자였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나는 금강에 사는 용이라오. ”
“용이 어찌 하늘이 아닌 이곳에?”

놀란 현인이 엉겁결에 물었다. 그런 현인을 조용히 바라보던 낭자가

“용이 되면 다들 승천하려고 한답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살면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 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옥황상제의 허가를 받고 이곳에 산답니다.”

승천하지 않고 금강에 사는 까닭을 설명하는데, 현인은 그저 황홀한 표정으로, 물에 젖은 낭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현인에게 다가선 낭자가, 현인의 두 손을 잡으며

“부용이라 하오. 당신과 혼인해도 좋다는 옥황상제의 허가도 받았습니다.

혼인하자는 말을 하고, 이어서

“욕심을 버려야 신선이 될 수 있어,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단지를 버리라고 말한 것입니 다. 만일 단지를 버리지 않았으면, 우리의 인연은 맺어질 수 없었답니다.”

그 동안 혼인을 맺을 수 있는 짝이 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았다는 말을 하더니, 현인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 촛불에 불을 붙인다.

다음 날부터 현인은 부용의 등을 타고 강줄기를 따라 오르내리기도 하고, 하늘을 날다 내려오기도 하면서 곳곳에 행복의 씨앗을 심었다. 그러는 사이에 산천의 신과 인간들은

“서로 돕고 화목하는 세상이 이곳에 열린다네.”

노래하며 일하고, 일하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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