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호수공원의 소녀상’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세종시에 살면서 느끼는 긍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호수공원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이 그중에서도 으뜸인 것 같다.

그런데 2015년부터는 유관순 열사와 같은 분들에게 품었던 존경심까지 확인할 수 있는 ‘평화의 소녀상’도 볼 수 있어 더 자랑스럽다.

나는 얼마 전에야 일본군의 극비문서를 해독하며, 일본이 어린 소녀들을 얼마나 괴롭혔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침략의 도구로 훈련된 일본군이, 나약하기 그지없는 소녀들에게 저지른 만행들을 기록한 문서인데, 살인의 맛을 아는 군인들이 가녀린 소녀들에게 폭력을 가하며 전투력을 고양시키려는, 일본의 목적을 여실히 알려주는 문서였다.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출입할 수 없는 곳에, 체계적으로 모아서 끌고 간 소녀들을 모아두는 위안소(일본의 용어)를 설치하고, 일본 군대가 통제하는 민간인들에게 관리 시키며, 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살인병기로 둔갑한 ‘일본군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하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아도 일본군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는 만행이었고,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은 자들이 자행하는 죄악이었다. 그것은 일본이 생각해도 끔직한 일이기 때문에, 드러나는 증거를 보아도, 부정할 수밖에 없는 범죄였다. 그런데 그런 부정은 일본의 습관화된 본성이다.

일본의 역사를 보면 남의 것을 빼앗고 훔치는 일에 능하고, 약탈을 위해서는 살육도 서슴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만행이 탄로 나거나 범죄를 책임져야 할 경우에 처하면, 먼저 부정부터 한다.

그러다 상대의 조그만 허점이라도 찾아낼 것 같으면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불행한 과거는 잊고, 미래를 생각하자.“

상호협조라는 구두선으로 문제의 본질을 흩뜨린다.

왜로 불리던 옛날의 일본은, 약탈을 자랑으로 여기는 왜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온갖 나쁜 짓을 해댔다. 얼마나 심했으면, 신라의 문무왕은 대왕암에 묻혀서 왜구의 침범을 막겠다는 유언까지 했겠는가. 또 고려가 멸망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겠는가.

세종대왕은 그런 왜구가 불쌍하다며, 한 곳에 모여 살게 해주었는데, 그들은 고마운 줄도 모르고 수시로 폭동을 일으키더니, 풍신수길 같은 자는 조선을 송두리째 빼앗겠다며 침략했다가, 이순신 장군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그리고 제국주의 일본은 시아버지 대원군과 며느리 민비가 다투는 틈을 이용하여 조선을 침탈하려는 오랜 꿈을 달성하더니, 어린 소녀들까지 멀고도 먼 동남아시아나 중국의 끝까지 끌고 가서 못살게 굴었다.

우리는 적국의 앞잡이 노릇으로 배를 불리는 자를 매국노라며, 이완용을 그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데, 그런 매국노는 전에도 있었고 현재도 수두룩하다. 17세기의 일본은 독도가 아닌 울릉도를 빼앗으려고 억지를 부린 일이 있는데, 그때 박재흥이라는 역관은

“나는 조선이 아니라 일본을 위해 일합니다.”

라는 말을 하며 대마도주한테 받은 뇌물로 첩까지 두는 호사를 부렸는데, 그런 매국노가 현재는 학자나 지식인을 가장하여 “일본의 통치가 우리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라는 말까지 하면서 호의호식한다.

그들은 스스로 학자를 칭하는데, 실제로는 자료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가짜들이다.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매국노가 되고 싶어 하는 그런 가짜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에, 일본은

“우리는 침략한 일도, 인도주의에 어긋나는 일을 한 일도 없다,”

라고 거짓말을 하며 태연할 수 있는 것이다.

언론 매체에는 세칭 ‘스타강사’라는 분들이 나타나, 그럴 듯한 언사로 시청자들을 열광시키는데, 문제가 많다. 그들이 현란한 입담으로 시청자들을 열광시키는 일은 좋은 일이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의 논리를 합리화 시켜주는 ‘바보짓’이 되는 경우가 있어 걱정스럽다.
그들은 기록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일본의 논리를 합리화 시키는 선동을 한다는 것도 모른다. 그저 시청자들을 웃기며 일본의 주장을 유포시킨다.

그런 어설픈 지식인들과 그런 그들을 부러워하며 박장대소하는 우리들이 있기 때문에, 일본은 안심하고 거짓말을 해댄다. 사실과 진실을 안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재벌이 아니더라도 100억 원짜리 집에 사는 사람이 많단다.

아파트 한 채에 100억 원을 호가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민족의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대통령이, 가녀린 소녀들을 끌어다 괴롭힌 일본한테 100억 원, 일본 돈으로는 10억 엔을 받고, 일본이 원하는 대로 위안부 문제를 들어주었다 한다. 그러자

“위대한 영단.”

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여전히 그런 일에는 학자라는 교수들이 앞장선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우리들이기 때문에 일본은

“위안부,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라고 거짓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가 원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과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보다 우리의 능력으로 사실을 규명하고 희생당하신 분들을 위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정직하고 사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실과 진실을 부정하는 일본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