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고려 충신의 낙향’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그때까지 이성계를 욕하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명을 받은 이성계 장군이시다.”

칭송하며 벼슬자리를 얻으려는 사람, 죽어도 역성혁명에는 동참할 수 없다는 사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로 갈라졌다. 그런 가운데 임난수와 정온은 ,

“충신이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은거의 길을 선택했다. 은거라면 길재가 유명한데, 그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과 같은 마을에 살며 동문수학한 사이였는데도, 도움을 요청하는 이방원에게
“노모를 모시느라 여유가 없다네.”

부모의 부양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임난수 장군은 그런 길재의 경우와 유사하지만, 목호의 난을 진압하면서, 국가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벼슬에 회의를 느낀다는 점에서는 크게 달랐다. 장군은    

“충신의 도리라지만, 억울한 백성들까지 죽여야 했던 일이 마음에 걸린다.”

백성을 잘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은거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거기다 명나라가 이성계를 조선의 왕으로 봉하는 조건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나, 그 비위를 맞추느라고 안절부절 못하는데 조선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쫓아가 명의 사신을 호통치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어, 호젓한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임난수가 낙향을 결심했을 때는 정온도 낙향의 뜻을 굳힌 것 같았다.

“고려는 원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더니, 조선은 명의 꼭두각시가 되어가는 같으오. 제 정신으로는 살아 갈 수 없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 나는 곧 낙향할 생각입니다.”

“그러시겠습니까. 사실은 나도 그렇다오.”

낙향하겠다는 정온의 말을 들은 임난수는, 둘이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에 깜짝 놀라면서도 뜻이 같다는 점에서는 반가웠다. 이후에도 이성계는 벼슬길에 나오라는 사자를 자주 보냈으나 둘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는 이른 봄날에 개성을 빠져나가는 행렬이 있었는데, 이사를 가는 임난 수와 정온의 가족과 가솔들이었다.

한양을 지나 남으로 향하는 일행을 뒤따라가는 임난수와 정온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수원과 천안을 거쳐 조치원을 지나도 그치질 않는다.

일행이 금강이 흐르는 연기에 이르렀을 때는, 초하의 녹음방초를 노래하는 꾀꼬리소리에 나비들이 훨훨 날아다닌다. 임 장군은 노랫가락에 취했는지, 나비들의 춤에 이끌렸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 사방을 휘휘 둘러본다. 그리고 

“참으로 신기한 곳이로다. 남에서 북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서남으로 흐르는 곳이 있다더니, 이곳이 바로 그곳인 모양인데, 산천의 기운이 잘 어우리는 구나.”

풍수지리에 밝은 장군이 감동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정공, 나는 이곳에 자리를 잡겠소이다.”

고향 부안으로 가는 길을 멈추고 금강가 양화리에 자리 잡겠다는 말을 했다.
“그래요. 원효가 당으로 가던 도중에서 도통했다더니, 장군도 그러신가요.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저는 고향 진양으로 가겠소이다.” 

정온은 친구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말을 하고 남으로 떠났다.

“나더러 원효라니, 과한 칭찬이지.”

임난수는 자신을 원효에게 비교해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신라의 원효는 중생을 구하는 불법, 즉 모든 복과 괴로움이 전생에서 자신이 행한 행위에 근거하는 인과응보라는 것을 당에서 배우겠다며, 의상과 같이 유학의 길에 올랐다. 멀고도 먼 길을 매일 걷다보니 온몸이 피곤했으나 포기하는 일 없이 계속해서 걸었다.
 
하루는 산속에서 잠을 자던 원효가, 새벽녘에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 어둠속에서 찾아낸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그것이 바가지가 아닌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는 것을 안 순간, 원효는 켁켁거리며 토했으나, 그 순간

“해골에 담긴 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못 마셨을 거야,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맛있게 마신 거야. 그래 맞아,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야.”

라고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환해지고 온 몸이 희열에 휩싸였다. 도가 통한 것이다. 

“여보게 의상, 나는 깨달은 바가 있어 당의 유학을 그만 두겠네.”

원효는 길을 떠날 채비를 마친 의상에게, 당에 가지 않고 신라로 되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갑작스런 말에 의상이 놀랐으나 어제와 달리 편안해진 원효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미 자네는 해탈했군, 스스로 해탈한 자네가 부럽네.”

원효가 이미 도통한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혼자서 당으로 떠났는데, 임난수를 남겨두고 남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는 정온의 마음이 그랬다.

정온을 배웅한 장군은 전월산 산자락에 이삿짐을 풀고, 은거생활을 시작하자 
 
“장군님이 이곳에 사시게 되신 것은 고을의 영광입니다.”

소문을 들은 고을의 수령은 물론 인근 주민들까지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며 기뻐했다. 

■권오엽 명예교수의 상상력이 글에 들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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