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훼손되는 행복의 상징’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인간의 소원을 하늘에 전하고 하늘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방법으로 세워진 것이 돌탑인데, 그것이 국사봉에도 있다.

그런데 2017년 3월 28일에 본 국사봉의 돌탑이 훼손되어 있었다. 벼락을 맞거나 바람에 날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일부러 무너뜨린 것이다. 훼손돼 흩어진 돌멩이들을 보는 순간, 20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나는 딱 20년 전에 축지법을 실행해보겠다는 100일 계획을 세우고, 경기도 하남시의 검단산을 훈련장으로 삼았다. 그리고 30여 일간 뛰어서 오르내렸더니,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저사람 축지법 하는 것 아냐!”

내가 축지법을 사용한다며 놀라는데, 그럴 만도 했다. 여유롭게 오르내린다면 150분은 족히 걸리는데, 70분 정도에 올랐다 내려오니, 놀랄 만도 했다. 나는 1,2분만 더 줄이겠다며 훈련을 계속하는데, 5초 줄이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산을 오르내리는 중턱에 서있던 돌무더기가 산산이 흩어져 있었다.

나무꾼들이 지개의 짊이 가벼워질 것을 소원하면서 던져서 쌓인 돌무더기, 고개 너머 친정집에 가는 딸이 걸음을 재촉하며 던진 돌이 싸여서 이루어진 돌무더기.

심부름을 가던 소년이 던진 돌들이 쌓여서 된 돌무더기였는데, 그것을 누군가가 무너뜨린 것이다.

나는 그날의 훈련을 포기하고 흩어진 돌멩이를 주워모았으나, 원형의 복구는 어려웠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다음 날에 가보니 또 무너져 있었다. 나는 또 주워다 대충 쌓아올렸으나 불안했다. 다음 날 일찍이 가보았더니 그대로였다.

그러나 누군가가 곧 나타나 흩뜨릴 것 같아,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다.

누가 그런 짓을 하는지, 호랑이가 되었든 곰이 되었든 만나보고 싶었다. 한 시간 쯤 기다렸더니, 호랑이도 아니고 곰도 아닌 사람 하나가 올라오고 있는데, 가죽 표지의 두꺼운 책을 든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그 남자가 성큼 성큼 올라오더니, 어설프게 쌓아올린 돌무더기를 보더니

“누가 또 우상을 세워놓은거야.”
 크게 역정을 내고는 흩뜨리기 시작한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요?”

 내가 튀어나가며 거칠게 물었더니, 그 남자, 웃찟하며 뒤로 물러서며 째려보는데, 오싹했다. 살기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여 돌멩이를 주워 모으며, 대들면 싸워줄 생각을 했다. 그런 나에게 겁을 먹었는지.

“우상을 믿다니 쯧쯧.”

내가 불쌍하다며 혀를 차더니, 그냥 왔던 길로 내려갔다. 붙잡고 정체를 물어볼 생각도 했으나 참았다. 그리고 그날의 훈련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당신, 급히 출장 좀 다녀와야겠어.”

먼 곳으로 출장을 다녀오라는 상사의 전화가 왔다. 분명히 나는 장기휴가를 허가받고 쉬는 중이었지만 거절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그것으로 나의 축지법 훈련도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출장을 떠났으나, 출장 내내 돌무더기의 일이 마음에 걸려, 출장을 마치고 귀가하자 마자 그곳으로 달려가 보았으나, 돌무더기는 없었다.
 
“그자가 또 허물었구나.”

나는 얼마 전의 그 남자가 허문 것이라고라 단정하고, 앞에 있으며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돌무더기가 흐트러진 곳에, 소복을 한 40대 초반의 여인과 중학생 하나가 울며 서있었다.

“흑흑흑……산신령님……제 남편을 용서해주세요……제 남편이 잘못했어요……천벌을 받고 죽었으니……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세요………흑흑흑……흑흑흑……”

대충 이런 말을 하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흐느끼며 하는 말을 정리해 보았더니, 부인의 남편이 급사했는데, 부인은 남편이 돌무더기를 무너뜨린 천벌을 받은 것으로 믿고, 산신에게 용서를 빌고 있는 것 같았다.

놀란 나는 조용히 두 모자를 지켜보다가, 울음을 멈추고 내려가는 그들의 뒤를 따라서 내려왔다. 그리고 어렵게 두 모자를 정류장에 가까운 식당에 모시고, 사정이야기를 들었다.

  부인의 남편 허풍선이 어느때부터인가 
“나는 신의 선택을 받았으니, 세상의 모든 우상을 퇴치해야 한다.”

신에게 선택 받았다며 종교시설에 낙서를 하거나 파괴하다가 파출소에 끌려가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검단산의 우상을 퇴치했다며 기뻐했단다. 그런 허풍선이 얼마 전, 후에 잘 계산해 보았더니,  그러니까 내가 출장을 떠난 날, 그날 저녁에 잠을 자면서

“돌무더기……우상……돌무더기”

 헛소리를 하다고 급사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분명 그이는 산신의 노여움을 사서 죽은 거예요.”

부인이 남편의 죽음이 천벌이라고 다시한 번 다짐하는데, 근심어린 눈으로 어머니를 지켜보던 중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도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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