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합강리의 연기 낭자’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금강을 만들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자가 뿌린 씨앗들이 물고기나 물풀로 변하기도 했으나,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는 것들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두둥실 흘러가다가, 새로 합류해 들어오는 미호천 물결에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두 물길이 합쳐지는 합강리구나.”

공중에서 주변을 살펴보다 내려온 씨앗이 밀려오는 물결에 휩싸였다.

“아 포근하다!”

물결에 휩싸여 아늑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씨앗을 감싸안은 하얀 물방울은 소용돌이치는 물길에 따라 가라앉았다 떠올랐다하며 투명한 막을 만들었다.

“야, 알이다. 금강과 미호천의 정기가 합쳐진 알이다.”

검은 씨를 둘러싼 물방울을 본 물고기들이 몰려들어, 지느러미로 쓰다듬어 주기도 입김을 불어주기도 했다. 물방울은 합강리의 소용돌이가 좋다며 그 안에만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보름날 밤이었다. 달에서 뻗어내린 한 줄기의 빛이 물방울에 닿는가 하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터지며 소녀 하나가 나왔다. 물의 요정이 태어난 것이다.

당신은 강물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물의 요정
뜬봉샘과 망이샘의 기를 받고 태어나신 요정님

알을 깨고 나온 물의 요정에게 물고기들은 맛있는 것을 물어다 주기도 하고,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며 정성으로 모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하백이 나타나더니,

“연기는 물속에서 살 운명이 아니니, 땅으로 올라가거라.”

물의 요정에게 연기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전월산 자락을 거주지로 정해 주었다. 연기는 그 명령에 따라 전월산 자락으로 이주했더니, 부모산 괴화산 부용산 같은 곳에 사는 신들이 찾아와 이것 저것을 도와주었다. 연기는 커갈수록 예쁘고 착하여

“나는 연기 낭자와 짝을 맺고 싶소.”

연기를 사모하는 신들이 늘어갔고, 연기는 눈길도을 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신들은

“타들어가는 내 가슴은 나도 어찌할 수 없다오.”

체념할 줄 모르고 애타는 마음을 고백했다. 그것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연기는 합강리에 처녀 총각들을 불러 모아 큰 잔치를 열였다. 그리고 하늘에 콩까지를 뿌리며 다음과 같은 인연가를 불렀다.

선남선녀여 눈을 뜨고 둘러보세요.
눈에 보이는 분이 천생 인연이라오
앞에 서있는 분이 나의 인연이라오.
옆에 서있는 분이 천생 배필이라오

연기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인연가가 끝나자, 강변에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때까지 수줍어하거나 마음이 들지 않는다며 말도 걸지 않고 있던 총각 처녀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앞에 있는 총각을 바라보고 옆에 있는 처녀를 바라보며

“아니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요!
“아니 이렇게 듬직할 수가 있나요!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손을 잡고 노래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연기님이 보여주는 낭자는 선녀뿐이라네
연기님이 소개하는 낭군은 신선뿐이라네

총각 처녀들은 연의 은덕을 감사하며 밤들이 춤과 노래를 즐겼다.

들의 콩깍지는 깐 콩깍진가 안깐 콩깍지인가.
깐 콩깍지면 어떠하고 안 깐 콩각지면 어떠냐.
깐 콩까지나 안 깐 콩깍지나 다 같은 콩깍지다

그야말로 처녀총각들은 눈에 꽁깍지가 씌인 것처럼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날 이후로 연기는 인연을 맺어주는 선녀이고 혼인을 맺어주는 신이라는 소문이 나, 연기를 찾는 신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도 정작 자신의 짝은 찾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보름날 밤의 일이었다. 전월산에 올라 금강에 비친 달을 바라보던 연기가

“하늘의 달이 물속에도 있네.”

혼잣말을 하는데, 물속의 달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떠오른다.

“나도 저런 달님 같은 분을 만났으면 좋겠다.”
혼잣말을 하면서 물 위에서 일렁이는 달을 보는데
“다음 보름날 저녁에 전월산으로 찾아가겠습니다.”

라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는데, 연기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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