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천지창조’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우리는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일이 참 많다. 그래서 아이들이 크면서
“엄마 나는 어디서 왔어요.”

라는 질문을 하면, 엄마가 당황하여“응 그게 말이야,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라고 얼버무린다.

그러면 아이는 다리 밑에 사는 거지를 상상하며 “앙”하고 울어버린다.

사람들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살면서도, 하늘과 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더 신기한 것은 우리나라의 신화나 전설에도 그런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단군이나 주몽 신화는 물론, 혁거세 신화도 하늘과 땅이 어떻게 생겼는가는 말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하늘에 사는 신이 이미 존재하는 땅에 내려온 것으로 하고 있다. 

단군신화를 보면, 하늘에서 처음으로 땅을 내려다본 환웅이

“아바마마, 제가 저곳에 내려가 인간들을 이롭게 하는 세상을 열어보겠습니다.”

라고 소원을 말하자, 환웅의 아버지 환인이

“그렇게 해라.”

허락했고, 허가를 받은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가, 그곳에서 만난 곰을 웅녀로 화생시킨 다음에,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고, 단군이 조선을 세웠다.

환인이나 환웅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하늘과 땅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해모수가 유화가 낳은 알에서 태어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했다는 신화는 물론, 하늘에서 백마를 타고 내려온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가, 신라를 세웠다는 신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구약성서’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느님의 말 한마디로 천지가 만들어진 것으로 했다. 하느님이 빛을 창조하고, 빛을 밤낮으로 나누고, 땅, 식물, 해, 달, 별, 동물, 인간을 창조한 것이라 했다.

그것을 중국의 ‘삼오역기’라는 책은 반고라는 거인이 만든 것으로 했다.

그 내용을 보면, 세상이 생기기 전의 옛날에는, 하늘도 땅도 밤도 낮도 없고, 색이나 모양도 없었다. 그저 한없이 펼쳐진 공간 속에, 상상도 못하게 큰 알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 알이 어디서 왔는지, 어째서 그곳에 놓여 있는지를 아는 자도 없었다.

알의 안은 어둡고 어두운 혼돈의 세상이었다.

하늘과 땅의 구별이 없고 어둠과 광명의 구별도 없었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서 반고라는 거인이 잠을 자고 있었다.

“아! 일만 팔천년이나 잤구나!”

1만 8천년 동안 잠을 자던 반고가 일어나, 하품을 하면서 팔다리를 쭉 뻗자, 알의 안이 흔들이기 시작하더니, 맑고 밝은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거운 것은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반고가 벌떡 일어서며

“하늘과 땅이 다시 합쳐지면 안 돼!”

 크게 외치며, 발로는 땅을 밟고 팔로 하늘을 받쳤다. 그렇게 서있는 동안에도 반고의 키가 자라, 하늘과 땅의 간격이 계속 벌어졌다. 하늘은 점점 높아지고 땅은 점점 단단해졌는데, 많은 세월이 흐르자, 반고도 나이가 들어 죽고 말았다.
그렇게 죽은 반고의

목소리는 천둥이 되고,
왼쪽 눈은 태양이 되고,
오른쪽 눈은 달이 되고.
머리는 동쪽의 산이 되고,
발은 서쪽의 산이 되고,
몸은 가운데 산이 되고,
왼쪽 팔은 남쪽의 산,
오른쪽 팔은 북쪽 산이 되었다.
입김은 바람과 구름과 안개가 되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자라게 했고,
피는 강과 바다가 되어 흘렀다.
땀은 비가 되고, 살은 논과 밭이 되고,
근육은 길이 되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수염은 별이 되고,
피부의 솜털은 꽃이 되고,
뼈와 이는 보석과 광물이 되었다.

그러니까, 반고라는 신이 나타나 하늘과 땅을 갈라놓고, 자신이 죽어서, 이 세상의 만믈의 근본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자기를 희생하여 하늘과 땅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 중국의 이야기가 한문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한문을 사용하는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이나 베트남의 신화에도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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