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쉼터의 왕버들’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벙축천 쉼터의 왕버들은, 흐르는 물을 머리라도 감으려는지 엎어지듯 뻗어있다. 

“두 그루가 하나로 합쳐진 거야, 한 그루가 둘로 갈라진 거야?”

왕버들 앞의 그네 의자에 앉아서 주고받는 남녀학생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학교에 있어야 할 학생들이 그곳에 있는 것이 이상하여, 의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그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희희덕거리며 위로 올라가는데, 걱정스러웠다. 

“좋을 때가 아닙니까. 그리 걱정하지 마세요.”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왕버들이 말을 건다. 놀란 내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자

“다정한 저들을 보니 70년 전의 일이 생각나는데, 한 번 들어보겠소.”

옛날 이야기를 해주겠단다.

“그러니까, 67년 전에, 우리민족의 가장 비참한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라오. 어떻게 된 일인지, 전쟁이 났다는 소문을 들은 지 20일도 안 되는 7월 14일에, 북한군이 금강에 나타났지 뭐요. 달려와도 그 보다는 빠를 수 없겠더라고, 해방된지 얼마되지 않아, 제대로 된 국대도 없어, 미군이 나섰다가, 윌리암이라는 장군이 포로로 잡히고 말았지.”

“미국 장군이 포로로 잡혔다고요?”

6,25 전쟁이라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처음 듣는 이야기라 깜짝 놀랐다.

“그렇다니까. 그날 양측에서 쏘아대는 포소리 때문에 귀가 머는 줄 알았지. 그때 참 많은 사람이 죽었지, 금강물이 빨갛게 물들 정도였으니까. 북한군들이 금강을 건너 유성 쪽으로 간 뒤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막스러웠지. 그때 구럭을 끼고 꼴을 베러나온 막기가 이리 오더니, 내 앞에서 쓰러져있는 병사를 발견했지. ”

“병사라니요? 그게 누군데요!”

“얼굴이 희고 코가 높은 것이 미군 같더라고. 아마도 금강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미군 같았어. 막기는 쓰러진 병사를 보자, 놀라지도 않고, 주위의 쑥을 뜯어서 짓이기더니, 그것을 상처에 붙이더라고,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마을로 뛰어가더라고.”

“지서에 신고하러 갔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왕버들은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말을 먼저 하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한참 후에 순이랑 같이 나타나는데, 글쎄, 찐 감자를 들고 오더니, 그것을 병사에게 먹이는데, 병사는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받아먹더라고. 처음에는 으깬 감자를 겨우 넘기던 병사가, 막기외 순이의 정성이 통했는지, 곧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더라니까. 그러자 막기와 순이는 비틀거리는 병사를 부축하고 마을로 가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어찌 되었는지는 나도 몰랐지. 막기와 순이는 전처럼 놀러 오는데, 병사 이야기는 일체 안 하더라고. 그래서 북한군에게 끌려 갔겠지라고 생각했지. 그때는 많은 사람이 북으로 끌려갔기 때문에 물어볼 생각도 안했어. 그리고 잊어버리고 지냈는데 말야, 바로 어제, 머리가 하얗게 센 막기와 순이가 이곳에 나타났지 뭐야.”

왕버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둘이 조금 전에 학생들이 앉았던 흔들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막기와 순이가 미군을 집에다 숨기고 4개월 정도 보살피다가, 부산까지 퇴각했다 다시 북진하는 미군부대에 돌아가게 해주었는데, 그가 귀국하면서 막기와 순이를 미국으로 데려갔다는 구만.”

“미국으로요. 그때는 미국 가는 일이 어려웠지 않았나요?”

“그렇지. 그런데 스미스라는 대위는 둘이 생명의 은인이라며, 막기와 순이 부모에게 사정사정하여 미국으로 데려가서, 막기는 스미스의 양자로 삼았고, 순이는 친구에게 입양시켰는데, 친구가 멀리 이사가는 비람에 둘이 헤어졌다는군.”

“그래서요?”

“막기는 스미스의 후원으로 박사를 따고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하는데, 그만두고 싶어도, 미국사람들 성화 때문에 그만 둘 수가 없다는구만.”

“그런데 막기와 순이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어요.”

나는 둘이 세종시에 나타났다는 것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이야기 할 테니 기다려요. 그러니까, 막기는 한 번 헤어진 후 순이를 만나지 못하며 바쁘게 살았는데, 글쎄, 의사가 되어 봉사활동을 하는 순이를 작년에, 우연히 워싱톤에서 만났다는 구만. 순이를 본 막기는 신령님이 도와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순이의 손을 잡고 결혼하자고 졸라서 결혼 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둘은 70이 넘을 때가지 처녀 총각으로 지내다, 신령님의 도움으로 만나 결혼까지 했다는 거지. 참으로 신통방통한 인연이라니까,”

왕버들이 신기하다며 혀를 차는데, 듣는 내가 생각해도 기막힌 인연이었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다음 이야기야. 어제 막기가 순이에 이런 말을 하더라니까.”

거기까지 말하고 나를 바라보는데, 크게 감동한 것 같았다. 막기가 순의 손을 잡더니,

“나는 순이씨와 혼인을 맺고 고향에 돌아올 수 있어서 행복하다오. 이제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살며, 순이씨의 손을 잡고 제천도 걷고 방축천도 걷는 것이라오.”
라고 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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