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 ‘오봉산 자락의 무릉도원’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2017년 4월 16일에, 세종시가 주최하는 ‘제15회 복사꽃 전국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서울 사는 정해중이, 오봉산 자락을 달리며 하늘에서 들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다.

옛날 옛날 아주 옛날, 천제가 신과 인간을 공평하게 다스리던 그 옛날에, 천제는 많은 왕자와 공주를 두었는데, 다섯 째 왕자 연천은 오봉산에 내려가 유람하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천하를 아는 거야말로 천자의 덕을 닦는 길이지.”

천제는 연천을 기특하다며 칭찬했다. 그러던 어느 해 봄날이었다. 오봉산 자락에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꽃들이 자아내는 향기로 가득했다.

“아니 저게 뭐야. 꽃이 날아다니네.”

향기에 취해 이리저리 거닐던 연천이 걸음을 멈췄다.
언덕 너머에서 꽃들이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금하다며 언덕에 뛰어오른 연천이, 또 무엇에 놀랐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낭자 하나가 강변을 거닐며 쥐었던 손을 펼 때마다 꽃들이 피어 올랐다.
 
“나는 천제의 아들 연천이라 하오. 낭자는 뉘시요?”

연천은 낭자에게 다가가 이름을 물었다. 갑작스런 일이었는데도 낭자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나는 하천을 다스리는 하백의 딸 용녀라 하지요. 자랑할 만한 재주도 아니지요.”

낭자도 연천의 수려한 용모가 마음에 들었는지 대답하며 싱긋웃었다. 그 미소에 용기를 얻은 연천이 낭자의 손을 잡고 강변을 걷기 시작하는데, 둘이 걸어가는 길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그날 이후로 연천은 매일처럼 용녀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다 석양녘에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연천이 잠깐 측간에 갔는데, 그 사이에 몰려온 검은 구름이 용녀를 휩싸안고 달아났다. 측간에서 나온 연천이 뒤쫓았으나 놓치고 말았다.

연천은 용녀가 흘린 향기를 더듬어 찾은 끝에, 검은 구름을 몰고 왔던 귀신들이 사는 굴을 찾아냈다. 숨을 죽이고 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머리에 뿔이난 귀신들이 보물상자를 용녀 앞에 쌓아 놓고

“이 보물을 다 드릴테니 우리 왕자와 혼인해 주세요.”

그들의 두목과 혼인해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연천이 주머니에서 꽃잎 하나를 꺼내 “후우”하고 불어서 날리자, 꽃향기가 굴 안에 퍼졌고, 그 향기를 맡은 귀신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모든 귀신들이 쓰러지자, 연천은 용녀를 안고 굴을 빠져나와,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복숭아 나무가 서있는 언덕에 이르렀다.

“낭자, 이 물을 마시면 편안해질 것이오.”

연천은 용녀를 복숭아 나무 아래에 앉힌 다음에, 호리병의 물을 권했다. 그물을 마신 용녀가 활기를 되찾았을 때였다.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귀신들이 소리치며 몰려왔다.

“낭자를 돌려주지 않으면 역병을 퍼트리겠다.”

긴 송곳니를 드러낸 귀신들이 씩씩거리며,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저주를 해댄다.

“도리를 모르는 악귀로구나. 살려두어서는 안 되겠다.”

소란을 떠는 귀신들을 노려보던 연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복숭아 하나를 따서 세 번 입김을 분 다음에 귀신들에게 던졌다. 공기를 가르며 직선으로 날아가던 복숭아가 귀신들 머리 위를 빙빙 돌면서 향기를 품어내기 시작하자

“아이쿠, 냄새야! 무슨 냄새가 이렇게 지독하노.”

귀신들은 복숭아 향기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려 했으나 발이 땅에 얼어붙었는지, 발버둥만 칠뿐, 한 발자국도 떼질 못한다. 그저 부들부들 떨다가 땅속으로 녹아든다.

복숭아 향기에 귀신들이 녹아 없어진 것이다. 그것을 본 연천이 용녀의 손을 잡고

“너희들의 향기가 악귀를 퇴치했다. 그 향기가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다.”

복숭아의 공을 크게 칭찬하며 호리병의 물을 뿌려 주었다. 그 이후로 오봉산 자락에는 더 많은 복사꽃이 피고 더 많은 복숭아가 열려 천하 제일의 무릉도원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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