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전월산 상려암 ’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전월산 등성이에는 500보 정도의 길이 있다. 코끼리 등처럼 오목하게 나있는 길은, 금강과 미호천이 합쳐지는 북쪽과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남쪽을 내려다보는데, 동에서 서로 가는 길목에 상려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에는 성왕봉으로도 불렀던 모양이다. 그 길을 걷다보면 앉아보고 싶어지는 바위인데, 그 바위에는 이런 전설이 얽혀있다.

옛날에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임난수라는 장군이 전월산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그는 성품이 어질고 학식과 덕망이 높아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가 망하자 이곳에 움막을 짓고 산초와 풀뿌리로 연명하며 나라를 잃은 슬픔에 젖어 살았다. 북쪽이 잘 보이는 큰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망한 고려를 생각하다 이윽고 세월이 흘러 그는 노환으로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그가 고려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 하여 그 바위를 상려암(想麗巖) 또는 상여바위라고 불렀다 한다.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대장부의 지조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지조가 고결하여 앉는 것도 송구했지만, 높은 기상을 본받고 싶어 살짝 앉아, 개인의 부귀영화는 물론 가문의 영광까지 약속되는 벼슬을 사양한 의지에 감동하는데, 시원하게 스쳐가는 바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에 오성이라는 천신이 있었는데, 달을 타고 세상을 내려보다, 전월산에 올라 보름달을 구경하는 연기를 보고 반하여, 자기도 모르게 달에서 내려, 낭자에게 말을 걸었다네.

연기도 늠늠한 그가 싫지 않아 이야기를 나누다, 오성은 서쪽으로 지는 달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연기는 산자락을 내려갔지. 그 뒤로 둘은 보름날 밤마다 등성이길을 걸으며 정담을 나누게 되었어. 오성이 하늘 이야기를 들려주면 연기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연기가 금강 이야기를 하면 오성이 두 눈을 둥그랗게 떴지. 그러다 연기가 살짝 바위 뒤에 숨기라도 하면 허겁지겁 찾아다니는 꼴이 가관이었어.

“여기에 숨은 것도 못 찾다니, 하늘에서 온 낭군이 맞나요!”

연기가 모습을 나타내며 놀려대기라도 하면

“낭자가 보이지 않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난답니다. 제발 나를 놀리지 마세요.”

잠시라도 헤어지기 싫다며 오성이 낭자의 두 손을 잡자, 낭자가 얼굴이 붉히며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오송은 더욱 힘주어 잡으며

“낭자 저 강을 보시오,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서 흐르며 들판을 풍요롭게 하지 않소. 나도 낭자와 하나가 되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소.”

  미호천과 금강이 하나로 합쳐지듯이 오성도 연기와 하나로 합하는 혼인을 맺고 싶다는 말을 하지 뭐야. 엉겹결에 청혼을 받은 연기가 얼굴이 붉히더니, 그것도 잠깐,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니요? 그게 어떤 세상인데요?”

오성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당차게 묻더라니까.

“낭자가 나와 혼인을 해주면, 나는 하늘을 돌며 보고 들은 지식을 이곳에 퍼트리겠소, 그것만이 아니오, 천지의 좋은 기운을 모두 이곳에 심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소.”

오성은 진즉부터 생각하고 있었던지, 혼인을 맺으면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계획을 막힘 없이 설명하더라니까. 그 말을 들은 연기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데. 
    
     낭군이 나와 같은 것을 생각하기에(相慮),
     어제도 오늘도 낭군만을 생각하지요(常廬),
     낭군의 이상이 곧 우리의 이상이오(想如). 
 
오성의 청혼을 받아들인다는 노래를 했는데,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것 같았어. 승낙의 노래를 들은 오성은 기뻐하며

“우리가 혼인을 약속한 이곳이 천하의 명당입니다.”
등성이 길을 뛰어다니더라니까. 얼마나 기뻐하는지,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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