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서 살리라 ’… 국사봉(國祀峰)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전통적 풍수설이 말하는 좋은 도읍지란, 전후에 안산(案山)과 주산(主山)을 두고, 좌우로 좌청룡 우백호의 역할을 하는 산줄기가 이어져야 한단다.

그 위에 주산과 안산 사이로 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면 더할 나위 없는데, 세종시가 바로 그런 풍수란다.

정부세종청사는 국사봉과 괴화산 사이로 금강을 흘려보낼 뿐 아니라, 국사봉 좌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청룡의 기세로 전월산으로 향하고, 우측 산줄기가 백호의 기상으로 장군봉 쪽으로 뻗어나는 곳에 위치한다. 행복도시를 계획한 풍수가들은 그런 풍수에 맞게 국사봉과 전월산 사이의 남면과 장기면 일대에 주요 시설들을 배치했다 한다. 

그런 풍수의 중심을 이루는 곳이 국사봉이다.

독골이라는 마을에서 삼천여보를 걸어서 오를 수 있는 봉우리로, 그곳에는 높이 2,5미터 둘레 5미터 정도의 돌탑이 서있다. 누가 언제 쌓았는지는 알 수는 없으나, 죽순 모양을 하고 하늘을 향해 서있는 돌탑은, 산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천신이 내려앉는 자리 같다.

원래 국사봉이란 마을이 기대는 뒷산으로, 천신에게 제사하며 마을의 안전을 비는 봉우리였다.

나약한 인간들은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재해를 만나면 신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처음에는 각자가 빌었으나 나중에는 신과 잘 통한다는 무당과 같은 주술사에게 부탁했고, 부탁을 받은 그들은 신이 깃든다는 곳에 설치한 제단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빌었다. 그때 제단의 불꽃이 흔들리거나 제물의 색깔이 변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무당에게 부탁할 뿐만 아니라 신이 깃든다는 곳을 찾아, 그곳에 신이 강림하여 편히 쉴 수 있는 돌탑을 쌓거나 금줄을 쳐서 신의 영역으로 정했다. 그런 곳을 국사봉이나 서낭이라고 하는데,

항상 정결하게 청소하며 잡다한 인간들의 출입을 금지시킨다. 그런 곳에 함부로 드나들면 동티가 난다. 무당은 그곳에 설치한 제단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신의 강림을 기원하는 굿을 한다. 그래야 기분이 좋아진 신이 강림하여 소원을 들어준다. 

우리나라에는 200여 곳의 국사봉이 있는데 서로 다른 유래담을 가진다. 어떤 스님이 병을 고쳐 주었다거나 귀신을 쫓아냈다는 유래담이 있는 국사봉. 임금님이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운 신하나 백성에게 상을 내렸다는 국사봉 등 유래가 다양하다.

그래서 한자의 표기도 각각 다르다.

국사봉의 ‘국’과 ‘봉’은 같은데 ‘사’의 경우는 다르다. 스님과 관계되는 곳은 절사(寺) 자나 스승 사(師) 자를 쓰고, 선비에 관계되는 곳은 선비 사(士) 자를, 임금님이 관계되는 곳에는 줄 사(賜) 자를 쓴다. 그 외에도 유래에 따라 일 사(事) 자, 제사 사(祀) 자로 표기하는 국사봉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독골 뒤의 국사봉은 어떤 자일까?
인근에 국가의 안위를 빌었다고 추정할 만한 사찰이나 선비들이 모여들었다는 서원의 유적이 없고, 특정한 인물의 전설도 전하지 않는다.

대신에 신이 내려와 쉴 수 있도록 마련한 것으로 생각되는 돌탑이 서있다.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잘 어울리는 곳에 오랜 전통을 계승하며 서있는 돌탑이다. 옛날에 주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비는 무당이, 신의 강림을 기대하며 쌓아올렸던 돌탑의 전통을 이어받으려고, 누군가가 세운 돌탑 같다.

그 앞에 서서 합장하고 소원을 빌면 살짝 나타난 신이 “그래, 너는 무엇을 원하는고?”라고 물을 것 같다.

스님이나 선비와 관련되는 국사봉이 많은데, 그것은 불교나 유교가 전래된 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은 불교나 유교와 같은 종교를 알기 전에는 자연에 깃든 신을 믿고 소원을 빌었다.

가까운 산천에 깃들었다는 신만이 아니라, 부엌에 산다는 조왕신, 변소의 자고신, 장독대의 장독신에게 빌기도 했다. 급할 때는 정화수를 떠놓고 빌기도 했다. 그런 관습은 현재도 살아있어, 수험생을 둔 어머니들은 자식이 원하는 학교의 교문에 엿을 붙이기도 한다.

그런 기복신앙의 근원지로서의 국사봉, 산자락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할 때부터 수시로 찾아다니며 소원을 빌었던 봉우리였던 것 같다.

■권오엽 명예교수
1945년에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산성초, 칠보중, 군산고, 서울교육대학을 거쳐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일본에 사는 동포들에게 우리 문화를 전하는 일을 했고 북해도대학과 동경대학에서 우리와 일본의 신화를 면학했다.

충남대학교에서 광개토대왕이 세운 천하를 강의하다, 독도가 왜 우리 땅인가를 일본 고문서를 통해서 확인하는 연구를 시작해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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