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8일 자 칼럼

 ▲천광노 학당장
 ▲천광노 학당장

강호동이 모래판을 떠나 TV에 출연할 때 돌아가신 한 지인의 노모가 의아해 물었다. “강호동은 왜 (씨름해)돈을 안 벌고 저렇게 놀기만 하느냐?”는 것이다. 희희덕 거린다고 혀를 찬 것이다.

천하장사가 되어 상금을 타고 금송아지를 치켜들 때는 열심히 일한 대가로 돈을 벌지만 TV에 나와서는 어쩌느냐 것은 천하장사보다 저게 돈을 더 많이 번다해도 광고모델이나 고액의 TV출연료 수입이 더 많다는 걸 노인이라 이해를 못한 것이다.

같은 논리로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출세를 할 학생의 본분이라는 사고에 굳어 그까짓 피아노를 하고 노래공부를 해 어디다 쓰느냐며 그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나 실은 노래를 하고 여행을 다니며 체험학습을 하는 것은 천하장사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은 잘 못된 생각이다.

이번 겨울방학을 맞아 손자(제자)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볼 생각이다. 웅변도 가르칠 생각이다. 한자공부도 시켜볼 생각이다. 세계사도 가르치고 지구반대쪽 미국사도 곁들일 생각이다. 가르칠 법적 자격이 있어서는 아니라는 말부터 하며 조손 50년 반세기 이상 세대차가 나는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가 어울려 이것저것 교과서도 없이 놀면서 즐기는 ‘환경조성교육’ 이면서도 교육이라기보다는 물과 공기와도 같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어울리자는 생각이다.

요즘 노인들은 잘 아이를 데리고 놀지 못한다. 또 노인에게 아이들을 맡겨 어울려 놀라고 할 부모도 드물다. 아이들은 오로지 신세대 유아교육을 전공한 여선생들이 가르쳐야 제대로 가르치므로 어린이집이나 학원에 보내야 강호동처럼 모래판 천하장사로 클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허허. 꼭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 드문 일이라 해도 아이들이란 학교생활이 첫째고 다음이 학원이나 어린이 집이라고 믿던데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노인들이 손자들과 어울려 사는 세상은 비정상이라는 사고의 벽을 깨낼 방도가 있다면 참 좋은 일이다. 노인은 굼뜨지만 애정의 질이 교사 강사 보육사보다 훨씬 좋다는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그렇다.

전통문화 중 버리고도 잘 한 것으로 착각한 것 중에는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고 스승은 주로 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여 새파랗게 젊은 스승이 모래판 지배하듯 교육판을 장악한지 오래다. 핵가족으로 분열하면서 노인은 냄새난다고 손자 안는 것도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는 신세대 부모들이 그만큼 똑똑해진 면도 없진 않으나 그보다는 노인이 제몫을 챙기려 하지 않은 탓이다. 제새끼 제가 키우지 왜 내가 키우느냐며 귀찮다 하고 관광버스타고 나돌아 다니는 것을 제대로 늙는 노인의 행복이라 생각한 측면이 더 많다.

나다니며 구경하고 등산하고 내려와 술 마시고 오가며 차가 흔들거리게 춤추고 노래하고 희희락락하는 것이 성공한 노인이라는 이런 이상한 의식은 가뜩이나 멀어지는 조손 세대의 벽을 높였다. 죽는 날까지 뒷방에 우두커니 앉아있거나 아니면 종일 경로당에서 10원짜리 화투놀이로 놀다 들어와 자고 또 나가는 것이 정상노인이라는 착각 말이다.

너희는 노인에게 물으라는 것이 성경이다. 청장년 중년들을 향해 노인에게 물으라는 것이다. 노인이 안다는 말로서 이건 진리와도 같다. 의당 손자들 데리고 놀며 이야기 하는데 있어 청장년이 노인을 따라 올 재간이 없다. 노인이 아이들과 어울리면 노인도 좋고 아이도 좋지만 더 좋은 사람은 아이의 부모라는 사실을 주장하면 노인의 고집으로 매도하던데 그렇지 않다.

2015년.... 마음 같으면 노인의 해로 부르고 싶다. 미래는 어린이들의 것 맞지만 자세히 뜯어 보면 노인들의 것이다. “아 그 쓸데 없는 소리 말아, 요즘 청년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무슨 노인들이 아이들을 맡는 다는 겨?” 참 옳은 말이고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다. “아이고~ 당신이나 그렇게 해 난 싫어 자격도 없고” 라고들 하던데... 보소! 이건 그대에게 손자가 있다면 그 손자의 할아버지 자격부터 벗어던질 고약한 말이다. 내 손자 남의 손자를 가리는 자는 내 손자가 남의 손자에게 왕따 당할 때 책임은 노인이 져야 한다는 걸 제대로 설명하려면 책 한 권은 될 터, 노인은 어린이의 미래 모습이다.

노인이 어린이에게 노래를 가르친다는 건 참 말 같지 않게 들리겠지만 이것도 반대다. 노래를 했던 노인이라면 아이들 노래공부 시키기에 젊은이보다 나은 측면이 있다. 노인이 웅변을 가치르고 한문을 가르치는 문제도 마찬가지고 컴퓨터 역시 잘하는 노인이라면 청년들에 못지않다. 훨씬 더 잘 가르친다기보다 다른 보너스는 야단치고 경쟁시키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노인이 더 우수하다.

한국사 일본사 미국사 중국사 세계사... 역시 전공자는 학교의 교사들이지만 노인이 가르치면 낫다기보다 친근하여 역시 경쟁하고 줄 세우고 등급을 나누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월등히 우수하다. 꼴찌와 일등을 차별하지 않고 자신이 배운 것을 느리게 가르치며 같이 즐겁게 놀면서 가르치는 것에는 교사와 천양지차 다. 교사는 월급 주니까 가르치나 노인은 월급 없어도 어울리면 좋아하니 노인은 스승으로 손색이 없다.

문제는 노인들이 스스로 난 못 한다 아니다 아는 게 없다 귀찮다 등등 의식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려 세상이 온통 경쟁사회가 되고 왕따 세상이 되고 남을 업긴여기는 갑질 세상에다 삭무시 개무시 인성파탄화 될까 우려다. 한두 사람 극소수라 하지 말 것은 불을 지른 놈은 한 놈이지만 타 죽은 것은 수십 명이며 묻지마 살인자는 백만분의1 이지만 총기 난사로 죽는 숫자는 수십 명이다. 이런게 인성파탄이며 그 녀석 한 명의 문제가 아닌 전체 교육환경 가정환경 노소환경과 밀접하여 독버섯은 혼자 나는 게 아니라 산중 환경이 그런 탓이다.

2015년의 세종시.. 노소가 어울리고 조손(祖孫)이 함께하는 독특한 프로젝트 하나를 추천하라면 수양 할아지 수양 손 자녀 맺어주기 운동이 아닐까 싶다. 여기는 세종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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