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6일자 사설

 ▲천광노 학당장
 ▲천광노 학당장

주지한바 세종매일은 준중앙지를 지향한다. 지역지에서 지방지를 넘어 중앙지에 준하는 준중앙지 중앙매일의 미래는 1000만명의 뉴욕을 다스리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55만 인구에 비교하여도 절반은 무리가 아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지만 사회 문화, 특히 정치와 교육의 측면에서 보면 필시 1000만 서울특별시와 차별화된 비등을 피치 못한다.

세종시가 갖는 또다른 허술한 차림새가 있다. 이미 위헌판정이 난 문제이나 엉거주춤한 행정중심 플러스 복합도시라는 너스레를 벗어 청와대와 국회도 내려오도록 해야 할 과제가 있다. 다 흘러간 얘기지만 수도이전위헌이라는 판결은 먼 훗날 위헌판결이 또 위헌이었다는 재판결도 예측불가한 일이 아닐 것이, 그렇다면 도청 이전도 위헌이라 해야지? 이러면 억지스럽다 할까하니 이 문제는 일단 접고,

오늘은 세월호 이후 큰 사건이라고 보이는 청와대 정윤회씨 관련 문건유출사건과 십상시(十常侍)를 생각해 보자는 제언이다. 문자대로만 말하면 십상시는 열 명의 보좌관이므로 좋은 말 같아도 이 말의 어원이 고약하여 나라를 어지럽힌 환관이라는데서 왔다는 점인데, 알고보면 대통령 아니라 장관 도지사 시장에게도 십상시는 있고 있기는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흑백을 가리고 호불호를 논한다거나, 이래야하고 저래야 한다는 말은 자칫 날을 넘을 우려가 높다.

다들 애국애민이고 충정이라 한다면 시비를 가린다는 것은 전문분야도 아니라 공연한 언쟁에 휘말릴 우려도 있으니 생략하자.

그러나 청와대에 과연 십상시(十常侍)가 있기라도 하여 국정이 농단당하기라도 하였다면 거꾸로 청와대 밖 언론사에는 심상시보다 더 막강한 ‘십상패’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힘은 십상시를 능가한다는 것을 간과치 말아야 한다.

‘십상패’란 열명의 정치평론가그룹 패널리스트를 말한다. 지상파 TV에는 잘 보이지 않는 이 십상패의 주무대는 종편TV방송사들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새벽에도 출연하는 이들 심상패는 지금 국민의 십상시에 준하는 명성과 지위를 얻었다고 볼 정도다. 그러나 청와대나 중국의 십상시와는 달리 이들 십상패는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입과 눈이 되어 준다는 긍정적 측면이 두드러진다.

말 한 번 잘못하면 그날로 출연길이 막힐지도 모를 외줄타기 정치평론의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고 또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대하여는 예측도 어려울 정도로 정치평론가들의 지식경쟁도 치열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 십상패가 잘만하면 우리나라는 날로 좋아질 것이다.

그분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할 말이 있다.

첫째는 일부지만 꼭 쪽쪽 편을 가르고 과도하게 어느 한쪽 입장에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흑백 구별이 완연해져 진보논객 보수논객의 표찰이 붙어버린 패널들의 말은 출연자 이름만 들어도 그가 할 말을 이미 꿰뚫어 보게 되는 경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이제라도 정권에 잘 보여 남은 낙하산이라도 타고 싶어 저런 말을 하는가 싶다고 보일 때는 불쌍한 생각까지 든다.

어느덧 이들은 국민의 어른이 되었다. 국가 원로급에 안착하여 그들의 말을 듣다보면 저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잘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일면 말로 떡을 하면 나라가 다 먹고도 남는다는 고사도 떠오르니 아닐 것이다.

문제는 말끝마다 아부아첨이 녹아있는 패널이 문제다. 대통령의 입맛에 단 맛 만 골라 쓰는 패널이 있는가 하면, 품은 원한을 풀 듯 대통령의 가슴에 비수를 들이대는 패널도 눈에 띈다. 공정하고 사심 없어 국민에게도 좋고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들어도 공감이 가는 말을 해주어야 할 자리에서 일방에 치우친 논조를 한번이 아니라 매번 반복하는 패널을 보게 되면 저들이 과거의 십상시(十常侍)와 뭐가 다르냐는 느낌이 들때도 있다.

정권에 붙어야 국물이 생긴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가 되어 뭔가 한자리 얻지는 못하여도 TV방송사의 편성입맛에 맞나 안 맞나 간을 맞춰주는 평론도 국민들은 감지한다. 검은 건 검다하고 흰 건 희다고 하여 마땅한데 이현령비현령 우물대다 결론은 색깔이 빤한 쪽으로 아첨하고 목줄 지키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런 패널은 일제가 우리를 식민지를 만들어 갈 즈음 매국노 이완용이 백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현실을 인정하고 일제와 손을 잡는 기초위에서 방법을 찾고 수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과 다름 아니게 들린다.

또, 여당 TV도 아니건만 판판,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야당을 목조르기 전문패널도 있던데 그들에게는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남자 혼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 남편에 비유하여 여당만 잘 되면 아내가 병든 것과 같아서 국리민복이라 할 생산이 안 된다. 그네들은 국가가이드이기 때문에 여야를 고루 보듬고 사랑하는 평론으로 국익의 묘약을 공급하는 ‘십상패’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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