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노 칼럼 세종의 눈

 ▲천광노 학당장
 ▲천광노 학당장

아들아! 오늘은 너의 마흔 한 번째 생일. 넌 지구반대쪽 미국에서 세 딸의 아빠로 살다보니 축하케이크 곁에 같이 앉지도 못하는 아버지 맘 쓸쓸함을 숨기지 못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며느리와 손녀딸 셋하고 기쁘고 즐겁게 보내면 못 보는 아버지도 기뻐하겠다.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터이니 생일은 정말 기쁜 날이다. 누구보다 네가 기쁜 날이고 못지않게 아버지도 기쁜 날이다. 의미가 있는 날이라는 말인데 의미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네가 없으면 지구가 없고 하늘도 없으므로 돈이나 보석보다 지식이나 명예와도 비교되지 않는다. 어찌 축하하지 않겠는가.

아들아! 그런데, 그러나 나는 너를 낳지 않았다. 낳음이란 두 가지 뜻 아니겠어? 첫째는 몸이요 다음은 생명이다.

몸은 물론 내가 낳았지. 그러나 생명은 내가 만든 기억이 없다. 나이 들고 이제와 생각하니 사람이 사람을 낳지만 사람을 낳은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 애들 때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젊어 철없던 청년의 때에만 아이가 생긴다는 것도 모르고, 그야말로 멋도 모르고 너를 낳고 동생도 낳았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젊을 때나 낳는 것이 자식이로구나.

의당 네 어머니가 너를 낳았지만 이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본새 나는 결과로 너를 잉태하고 출산했으나 엄마가 무슨 재주로 네 머리를 만들고 오장육부와 사지를 만들어 내며, 감히 어디라고 네 생명까지 창조하였겠느냐.

엄마 아빠는 도구였다. 기계 였다. 기계가 무언가를 만들어 낸들 누가 기계의 아들이고 저 기계의 딸이라 하느냐는 것은 어려운 문제도 아니야. 기계를 만든 주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든 그 기계에 재료를 넣고 전기를 넣어 만든 단순한 제품이 아니고, 부모라고 하는 기계를 지으신 이가 그 기계를 통해 몸을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어 널 태어나게 했다는 말이다.

이러면 네 어머니는 또 이게 무슨 소리냐 하겠지? 널 낳느라고 206개 뼈마디가 갈갈 찢기는 산통을 겪어 낳았는데 지금 무슨 넋 빠진 소리냐며 엄마는 서운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엄마고 아빠는 기계였다. 만나서 그렇게 저렇게 살다 보니 너라는 생명이 자리 잡았고 네 몸이 생겨 세상에 태어난 것이지.

아들아! 아버지는 정상적 사고를 한다. 너는 내 자식이 절반이 못 되어 더 많은 너는 아버지를 도구로 쓴 분의 자식이다. 네 할아버지가 계셨다. 네 증조할아버지가 계셨었고 고조할아버지도 계셨다. 중시조 할아버지와 시조할아버지가 계시어 그분들이 네 부모를 생산해 내는 도구로 만들어 내어 네가 태어났으니, 절반이상이라 말하듯 진정 너를 낳은 분이 누구라고 보느냐.

하나님이라 하면 믿어지나? 천지신명이라 해야 믿어지겠나? 부처님이야? 아니면 절로 절로 자연히 생겼을까? 공기의 아들인지 물의 아들인지를 몰라 바람의 아들이라는 영화도 있다 는데, 분명한 것은 내가 너를 다 낳지 않았다.

절반은 내가 낳고 절반은 엄마가 낳았다. 그럼 또 엄마가 펄쩍 뛸지 모르니 그래라 엄마가 아홉 아빠가 하나라 하든 편한 대로 나눈들 상관이 뭘까마는 내 몫이 더 많고 적고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왜, 그 부모나 어떤 분이건 간에 어째서 세상에 태어나 살고 또 대를 이어 후손을 낳고 기르는가의 본질이 있다.

나는 나의 생일날이 되면 늘 해오던 생각이 있어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께 감사다. 그러나 이미 무덤이 되신 부모님은 세상어 없어. 하여 근 30년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네 조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자식된 도리가 무엇이냐는 건 윤리가 됐든 철학이 됐든 다 걷어치우고, 하나면 꼽으라면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건강한 얼굴, 활발한 얼굴. 웃는 얼굴. 즐겁게 사는 모습. 부모는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오르지 건강하고 밝은 얼굴로 웃는 자식의 모습을 보는 것을 제1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비록 돌아가셨지만 나는 내 생일이 되면 나를 보시라고 산소를 갔다. 가서 나 여기 있으니 실컷 보시라고 한참을 보내고 오기를 수십 년 하여 너도 잘 알지?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다 보니 올해부터는 좀 뜨문하게 찾을 생각이지만.

생각해 보면 참 젊은 날이 좋았다. 생일 선물이나 좀 사주고 케이크에 촛불 켜고 사랑하는 000 생일 축하한다는 노래를 부르던 그때가 참 좋았다. 이제는 그 맛을 잘 모르겠어. 친손 외손이 여섯, 매년 두 달 사이로 맞는 생일이면 여간 정신을 차리지 않을 경우 내가 망가져 버려. 왠 세상이 이다지도 험한지 그저 100년 200년 다시는 이 할아버지 같은 일생을 살지 않아야 한다는 걱정인데 후손들을 위해 기도하는 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들아! 오늘 네 생일을 맞아 내 할 말이 있다. 이 잘난 아버지의 아들보다 이 못난 아버지를 만들어 도구로 쓴 바로 그분의 아들이라는 걸 생각하기 바란다. 미국을 가나 영국을 가나 잊지 말 것은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은 절반이하로 확 줄일 것이, 아버지는 별로 신통한 사람이 못 된다.

아버지를 닮는 게 자식이라지만 정녕 너는 나를 닮지 말아야 한다. 나를 닮아서는 미국 주류사회로 진입할 능력부족이야. 뭐든 나보다 낫고 앞서야 한다. 건강, 지식, 환경. 아이들 기르기, 인격... 사람의 능력이 원시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변화되듯, 무한한 능력으로 부모를 도구로 써서 너를 지으신 천지의 주재자 하나님을 닮고 부처님을 닮고 지구환경을 다스리는 조물주의 아들이라는 자부심으로 우주시대를 열고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생애를 살아야 한다.

우리 헌법정신을 따라 한반도 평화와 자유민주의적 남북통일의 무거운 짐을 지워준 아버지세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미국에서 할 일이 국내에서 할 일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천리를 가나 만리를 가나 변하지 않을 너 내 아들아. 사람은 왜 사느냐를 생각하는 날이 생일이어야 한다. 살아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라. 그 첫째는 아내 사랑부터 시작이라니까. 거기서부터 만사가 풀리고 효도도 나오고 후손의 성공도 아내로부터야. 맞는 말이다. 환경이 좋아야 나무가 자란다. 아내가 너의 소중한 환경이라는 사실. 며느리는 역지사지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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