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문학편집인 박용희

백수문학편집인 박용희
백수문학편집인 박용희
지난주에는 초·중·고등학교의 수학여행 및 현장체험학습이 대다수 진행되는 기간이었다. 우리 집 삼남매들도 사고가 나던 수요일에 수학여행과 현장체험학습을 간 날이라서 내심 긴장하고 불안감을 갖고 있던 때에 승객 475명을 태운 청해진해운 소속 진도 여객선 세월호가 제주도로 향하던 중 침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여객선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나선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 교사 15명, 선원 30명, 일반인 89명 등이 탑승하고 있었다. 

벌써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더 이상의 구조자는 없고 실종자들이 사망자로 빠르게 뒤바뀌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 야속하고, 갈수록 희망이 사라지고 있음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유가족들의 처절한 아픔에 온 국민이 울고 가슴이 먹먹하며 시름에 잠겨 집단 멘붕상황이다. 걱정된 마음에 수시로 뉴스를 들어보지만, 생존소식은 없고 슬픈 소식만 이어지는 상황을 반복해서 접하다 보니 머리가 아프고 그래도 걱정되어 또다시 상황을 알아보길 반복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이기에 참담함은 훨씬 크다. 선장이 제대로 초기대응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많은 생명을 잃지 않았을 텐데, 선장을 향한 원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 외신보도에서도 선장의 무책임을 가장 비판하고 있다.

선장을 비롯한 탑승 선원 30명 중에서 생존자는 20여 명이다. 긴급 상황일 때 각자 위치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선원들이 모여 있었다는 정황이 포착됐고, 이는 사고 후 초기대응 과정에서 승객구조 의무를 소홀히 했을 가능성이 높다. 


1852년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호는 남아프리카 항해 중 암초에 부딪쳐 침몰했다. 사고 당시 승객은 630명이었지만 구조선은 3척밖에 없었고, 전체 180명이 탈 수 있을 뿐이었다. 선장이자 사령관 세튼은 “여자와 어린이부터 태워라”라고 명령하면서 병사들에게 부동자세로 갑판 위에 서 있게 하였다.

이어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구명정으로 하선시켰고, 그 때까지 갑판 위의 사병들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구명정에 탄 부녀자들은 버큰헤이드호가 파도에 휩쓸려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갑판 위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 세튼 대령을 포함한 436명의 병사들을 바라보며 흐느껴 울었다. 이후 놀라운 침착함과 자기희생으로 더 큰 인명피해를 막은 버큰헤이드호 전통은 각종 해상 사고에서 불문율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에게 대단히 필요한 덕목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에 따른 유가족, 실종자 가족, 생존자는 물론 이들을 지켜보는 국민들까지 세월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증세가 바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고, 사고 며칠 후에 짜증을 내거나 몸이 아픈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잠재되어 있다가 몇 달 뒤에 증세가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어려움을 겪는다는 신호가 나오면 증세가 만성화 되기 전에 빨리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세월호 참사에 따른 고통을 함께 나누고, 극복하고자 힘을 모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선거운동을 잠시 멈추고 있고, 연예인들도 행사를 잇달아 취소하면서 애도의 마음을 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우리 세종시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또 한 번 시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평생 잊지 못할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의 일이 언제 우리의 일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진정성 있는 애도를 표하면서 어떻게 하면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을지, 도움이 될지, 이 사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지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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