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효교육원장 최기복

   충청효교육원장 최기복
   충청효교육원장 최기복
우리는 지금 자존감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무엇이 올바른 삶이고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일인지. 저들 사이에서 무수히 방황하고 갈등해야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어서다. 

 몇 년 전인가 영국에서 17, 18세 소녀들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소녀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에서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17, 18세 소녀들이 아이를 낳으면 건강하고 영리한 아이로 자랄 텐데 무엇이 그렇게 경악할 일이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과 전혀 무관하니 문제다. 영국의 17, 18세 소녀들이 아이를 낳는 것은 자기가 죽지 않기 위해서란다.

아이라도 낳아 키우니 그나마 거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뭐 그런 얘기다. 아이라도 키우지 않으면 살아갈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비참하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한 일인가.  

 그런데 이런 일이 우리에게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더 큰일이다. 지금 청소년들을 보자. 많은 아이들의 꿈이 재벌 2세란다. 자기에게 부여하는 긍정적인 가치 차원에서의 자존감을 형성할 새도 없이 그저 황금만능주의에만 치다보니 저런 발상도 나왔으리라.

그러니 저런 발상 속에서 효가 어떻게 뿌리를 내리겠는가 말이다. 효는 절대 물질적 풍요로 실행되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은 어릴 때의 가족관계에서 발달된다는 것이 정설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심리학자인 캐런 호니도 과도하게 인정받기를 원하거나 개인적 성취에 대한 극단적인 열망을 표현하게 되면 낮은 자존감에 빠진단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성적이다 진학이다 성공이다를 강요할 일이 아니다. 수없이 아니, 지칠 때까지 말해도 소용없는 일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뒤 좀 돌아보며 살 때도 됐다. 죽을 때까지 욕심을 내보았자 잃는 것만 늘어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이젓 저것 다 잃고 나면 그제야 왜 그랬나하고 한숨부터 쉬는 것이 우리들 인간이다. 

그러니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보살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은커녕 늘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부모여야 한라면 누가 아이를 낳아 어르고 다독이고 챙겨주겠는가. 물론 부모들도 다 잘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공자는 부모가 잘 못하면 간하되, 설사 쫓지 않으시더라도 공경해야 하고 속으로는 애태울지언정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지 않았는가 말이다. 어려서부터 자기 성격대로 말하고 성질대로 대하면서 키웠으니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웠겠는가. 당연히 지들도 부모 따라 할밖에. 그러니 그 속에서 효자가 나올 것이며 설사 나온다하더라도 공경과 사랑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인간성과 도덕성을 회복하고 인성과 인격을 갖춘 건전한 사회로 거듭나길 바란다면 효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자존감을 살려주는 일이며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지 않아도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간호학과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단다. 간호사는 누구인가. 그야말로 사람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자존감에 대해 깊이 있는 의미를 부여해야 할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생명의 현장에 투입되기도 전에 자존감을 부여 받지 못한다면 환자들을 어떻게 돌보겠는가. 

이제 누구랄 것도 없다. 더 늦기 전에 청소년들부터 효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삶의 가치가 배양되기 전에 물질적 만능의 폐해를 더 이상 심어주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인성이나 인격 배양에 천문학적인 금액과 고통스러울 만큼의 노력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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