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희 백수문학 편집인

우리나라 음력설 다음날이었던 지난 2월 11일 추기경회의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의를 표명했다. 오는 28일 교황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갑작스런 발표에 놀랍기도 했고, 그 이유가 궁금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사의 표명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지난 몇 달 간 내 기력은 교황직을 수행하기가 불가능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약해졌다. 완전한 자유의사에 따라 교황직의 포기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황 직무는 그 영적 본성 때문에 말과 행위뿐만 아니라 기도와 괴로움으로 수행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많고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신앙생활에 관한 질문으로 흔들리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교회를 다스리고 복음을 선포하려면 몸과 마음의 힘이 모두 필요하다. 앞으로도 평생 기도하는 삶으로 하느님의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고 싶다”고 말했다.

교황 사의 표명에 대한 이유를 알고 나자 여러 면에서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독일에서 태어나 현재 만 85세 고령인 교황은 “육체적·정신적·영적으로 교황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느낄 경우 사임할 권리가 있다. 육체적인 면에서 내가 교황 업무를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되고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고령으로 인한 업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것에 대한 대비는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기준으로 연령 제한을 두고 있다.

추기경 중에서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만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진석 추기경은 만 81세로 콘클라베에 참석하지 않게 됐다.

하루에 발생하는 사건사고 중에서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사기, 강간, 강도, 살인, 뇌물수수,  방화, 거짓말, 폭행 등 온갖 어두운 소식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런 차에 교황의 사의 표명은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로 인한 파장은 클 것이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양립할 것이다. 많은 일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파국을 맞이하고 불행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문제는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가정의 재산권을 이양할 때에도 적용되고, 사회기관단체에서 정년퇴임 없이 끝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하는 사람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일이다. 단순히 고령만을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은 아니다. 무능함, 질병도 우선멈춤을 해야 할 때이다.

교황의 사의를 접하면서 떠오른 시가 있다.


이형기 - 낙화(落花)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기 때문에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이별은 슬프지만 그 이별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영혼은 더욱 성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미 이 모든 것들을 깨닫고 지혜롭게 순응하신 것이리라.
삶의 시작도 쉽지 않지만 끝맺음은 더 없이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끝맺음을 추구한다. 자연은 사계절을 통해 인간에게 깨달음의 기회를 수없이 주고 있다. 현명한 이들이여!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살자. 삶의 끝맺음을 잘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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