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근 최기복 충청효교육원장

지금 우리 사회는 부권과 모권 사이도 심상치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0대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아버지였다. 아직 가부장제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였을까, 아니면 묵묵히 가족을 위해 일만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에서였을까.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어머니가 모든 것을 도맡다시피 하면서부터 소위 아버지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요즘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아버지 살해다. 서구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아버지 살해는 이제 그 빈도가 오히려 우리에게서 더 심해졌다. 우리 사회에서 존속살해는 가장 큰 범죄중의 하나였다.

고려시대부터 강상죄로 반역죄와 더불어 가장 무거운 형벌이었으며, 조선시대는 죄인을 산채로 묶고 사지를 끊어내는 형벌인 능지처사(陵遲處死)를 당할 정도로 가중처벌 됐었다. 그러니 부모살해, 특히 아버지 살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 그 지독히 악랄한 범죄가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효에 대한 인식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아버지는 의례 밖에서 일만하는 존재가 돼버린 지금 어머니의 역할이 새삼 중요시되고 있어서다. 그저 자식들 앞에서 시어머니에게 당했던 서러움만 내려놓을 것이 아니라 부모 섬김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미치는 어머니의 영향이 무서울 정도로 커져가는 시점에서 굳이 미국의 ‘행복한 모자일체론(母子一體論)’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세계 1차 대전 중에 프랑스 군인들이 죽어가면서 가장 많이 외친 것도 어머니였고, 일제의 병사들 역시 전쟁 통에 죽어가면서 부른 것은 일왕(日王)이 아닌 어머니였다고 한다. 어머니의 존재는 지구 그 어느 곳에서도 늘 같았을 것이기에 죽음 직전에도 그 애틋함을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어머니는 어떤가. 어머니의 위상과 권위는 한껏 높아졌다. 딸들이 어머니를 옹호하고 나선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어머니의 역할과 도리는 그리 높아진 것 같지가 않다.

여성시대니 페미니즘이니 심지어 여성가족부가 생길 정도로 여성을 앞세운 여러 가지 명칭들도 나돌고 있지만 가족관계는 그리 낳아진 것 같지가 않다. 또 존속살해와 같은 강력 범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여성들의 권위와 지위, 나아가 의식과 인식이 바뀌면서 새로운 세태 또한 유행되고 있다.

수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동거문화가 이제는 아예 정당화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특히 대학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계약으로 이뤄지는 동거는 결코 결혼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혀 책임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결혼은 가족적 사회적 법률적인 테두리 안에서 인정되는 가정이지만 동거는 그런 부담이 없으므로 전혀 누구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부모에 효도가 무엇이랴. 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꼭 여성들로 인해서 나타나는 것이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사회전반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역할에 거는 바람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그럴 지경에서야 효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대해졌다. 어머니가 효를 고부간의 갈등 내지는 고통으로 여길 경우 그 자식들의 생각과 행동거지는 말할 필요도 없게 된다. 

한때 ‘아이들 앞에서 너무 금슬 좋은 것만 보이지 말아라’하는 말들도 했었다. 아이들 앞에서 너무 살가운 부부 모습만 보여주면 나중에 결혼해서 저들끼리 갈등이 생길 때 이겨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이 참으로 먼 이야기만 같이 들리는 까닭은 왜일까.

설이 지나면서 새해가 시작됐는데 이렇게 무거운 말을 꺼내는 것은 설에 모여서 재산이나 빚 때문에 형제간 다툼이 있었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으니 이제 어머니가 나설 차례다. 효의 참 모습을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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