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근 최기복 충청효교육원장

우리말에 입으로 한몫 본다는 말이 있다. 말만 번지르르하니 제 실속만 챙기는 자들을 이름이다. 요즘 세태를 보면 이 말이 너무나 실감난다. 효도 마찬가지다. 입만 내세워 운운하는 것은 결코 효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의 효는 살아서 보다 죽어서 한결 더했다. 무덤 옆에 초려를 짓고 3년 동안 수묘(守墓)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거니와 관직을 버려야 하는 것은 물론 먹고 싶은 음식, 입고 싶은 옷도 챙겨서도 안 됐다.

3년 동안 흰죽만 먹어 소금이나 간장 넣은 음식을 피했고, 고기며 술이며 담배는 아예 금기였다. 그러니 색기(色忌)는 말할 것도 없었다. 또 거상죄인(居喪罪人)이라 하여 하늘을 보아서는 안 되었기에 상갓을 쓰고 다녔다.

아울러 상중에는 부모의 묘가 그 무엇보다 소중했기에 생업에 종사해서도 안 되고 재산을 늘리거나 논밭을 바꾸어도 안 되며 심지어는 집에 불이 나도 가서는 안 됐다.

뿐만 아니다. 돌아가신 이의 죽음 형태에 따라 신체를 자학하거나 불편을 감소해야 했다. 그 중에 하나가 빗질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주세붕의 이야기는 효행의 극치를 보여준다.

주세붕은 어머니가 병중에 있을 때부터 빗질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병중의 어머니가 이가 들끓자 자기 머리를 어머니 머리에 대고 이가 다 옮겨오게 해 어머니의 괴로움을 가려움으로 대신하고자 했다. 물론 어머니 3년 상 내내 한 번도 빗질을 하지 않았다.

또 장님행세를 하는 집안도 있었다. 이충작은 부모의 상중에 너무 울어 실명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팡이를 짚고 한 번도 묘소 참배를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임금이 그의 효행을 높이 사 승지로 임명하자 조정대신들의 반대 입장이 거셌다. 승지를 장님으로 앉힐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임금은 단호했다. “신들은 그의 보이지 않는 눈을 미워하지만 나는 그의 보이지 않는 눈을 사랑한다. 보고서 못된 일을 하는 눈보다 아예 못 보는 눈이 얼마나 나은가. 더욱이 정치는 눈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것임에랴” 대신 중에 그 누구도 입을 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일로 이충작의 집안에서는 상중에 일정 기간 동안 장님 행세를 하는 습속까지 생겼다 한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효행을 당연한 것처럼 해냈기에 조선시대에는 그들을 효자로 극찬했다. 정말 아름답다 못해 눈물이 날 정도다.

그러나 요즘은 이것이 효의 전부가 될 수도 없었거니와 그렇게까지 효행을 강요해서도 안 될 것이다. 너무나 먹고 살기가 빠듯해서기도 하지만 아예 그런 마음을 들도록 보여주지도 못한 우리들의 잘못도 크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K씨의 이야기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인문사회계열 시간강사는 결혼 서열이 농촌총각 다음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아서 인지 그는 50대인데도 아직도 총각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장남에다 병상에 계신 부모님까지 계시니 어느 여자 하나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누나들까지 성화를 붙였다.

누나들의 성화가 지나쳐 이제는 매형들까지 거들고 나섰다. 부모님도 생각해야지 언제까지 자기 생각만 할거냐, 여자는 거기서 거긴데 왜 그렇게 눈이 높으냐는 등부터 듣기 거북한 말까지 서슴지 않고 해댔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부모님의 병상에 들러 수발을 들지는 않았다. K씨는 비록 총각이지만 일주일 한 두 번은 반드시 부모님 댁에 들러 집안 청소며 수발을 한시도 거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누나나 매형은 돈만 조금 보내는 것으로 생색은 다 냈을 뿐 정작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남 몰라라였다. 입으로 한몫 본 셈이다. 물론 돈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도 돈은 도둑을 양상군자로 창녀를 요조숙녀를 만든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효는 다르다. 부모님이 언제 돈부터 바라던가.

이제 설이 다가왔다.

선물이나 용돈 챙기기에 앞서 자식들 앞세워 부모님 찾아뵙는 것부터 하는 게 순서다. 뭔가 보여줘야 따를 것이 아닌가. 입으로 한몫 보지 말고 나도 부모라는 사실을, 언젠가 늙는다는 진실을 반드시 깨우쳐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식들을 용돈이나 챙겨주는 기계적인 인간을 만들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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