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희 백수문학 편집인

어느새 아이들의 긴 겨울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시작됐다. 작년부터 놀토가 사라지고 주 5일 수업을 하다 보니 다소 겨울방학이 짧았다. 개학과 동시에 각 학교에서는 졸업식이 예정되어 있고, 또다시 봄방학도 시작된다. 학교에서의 마무리는 2월에 되고, 시작은 3월이다. 그런 면에서 2월은 마무리를 하는 중요한 달이라 할 수 있다.

유년시절의 졸업식은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작별’이란 노래를 후배 재학생들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주신 책으로 공부 잘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라고 선창을 한다.

이어서 졸업생들이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우리나라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라고 부른 뒤 3절은 졸업생과 재학생이 다함께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를 구슬프게 불렀다.

1980년도에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에는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니었다. 그때는 대부분이 가난하게 살았는데, 가정형편이 아주 어려운 아이들은 그나마 중학교도 못 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헤어진 후 지금까지 얼굴을 못 본 친구들도 있다. 그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서 일터로 갔을 친구를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요즘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모두 중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공장으로 떠나갔다. 학구열이 높은 친구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야간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일하고 공부하기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졸업식날은 진로가 확연히 달라지는 현실이 곧 기다리기 때문인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의식이 거행됐다. 학생도 울고, 학부모도 울고, 선생님도 함께 울어서 어떤 교실은 울음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정서가 많이 달라진 탓인지 최근에는 아이들이 밀가루와 계란을 던지고, 교복을 찢는 등 험악한 졸업식을 연출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사회적 비판과 반성이 있으면서 요즘은 새로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졸업식이 축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의 진학은 거의 백퍼센트 이뤄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별다른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됐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의 진학은 자신의 적성과 성적에 따라 달라지기는 해도 그렇게 우울한 졸업식은 아니다. 고등학교로의 진학 역시 거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학교의 졸업식은 대학으로의 진학이 또다시 경제적인 형편과 맞물리기 때문에 축제 분위기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대학으로의 진학에도 많은 편차가 있어서 기쁨과 슬픔의 정서가 함께 하는 졸업식이 될 수 있다.

대학 졸업식도 마찬가지인데, 대학 졸업식에는 참여하지 않는 졸업생들도 다수이다. 취직이 되지 않은 졸업생들은 침울한 기분에 졸업이 그리 달갑지 않은 행사이다. 그러다보니 아예 취직이 될 때까지 졸업을 미루고 한 학기 내지는 몇 년을 더 미루었다가 졸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옛날은 옛날대로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졸업식은 여전히 기쁨과 슬픔과 아쉬움과 홀가분함과 설렘이 동반된다. 슬픔보다는 기쁨이, 아쉬움보다는 설렘이 많은 졸업식이면 좋겠다. 졸업생들의 앞날에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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