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버드나무가 실눈을 뜬 채 어린 것들의 어설픈 사랑을 엿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1959년 화창한 봄날의 어린 것들의 어설픈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 후로 소천이와 숙희는 가까이 만나지 않고 먼발치에서만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다른 애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눈빛과 손짓만으로 사랑을 하였다. 다행히 숙희가 교장 선생님의 딸이였기 때문에 장난기 많은 애들로부터 고무줄 끊기, 아이스케키, 공기놀이, 발로 차기 등의 장난을 치는 일은 아니 하였다.

“야! 소천아! 숙희하고 잘 되니?”  
하는 동님이의 말에 소천이의 마음은 찔끔할 때도 있지만, 짓궂게 굴면서도 마음씨 착한 동님이는 끝까지 비밀을 지켜 주었다.

소천이의 학교생활은 즐거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해 5월의 어느 일요일 엄마가 소천이를 부르시더니 보자기에 싼 것을 교장 선생님댁에 갖다 드리란다.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심부름한다는 것이 귀찮고 힘들 일이건만, 소천이는 밝은 목소리로 ‘네~!’하고 단걸음에 달려갔다.
보따리에 싼 물건이 무엇인지 알바 없다. 그저 숙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가는 도중 교장선생님의 사모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하는 걱정만 앞선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공손하게 인사하고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하기로 했다. 학교 언덕 아래에 있는 사택은 조그만 초가집이다.

마당에 들어서 목을 가다듬고,
“사모님, 계세요?”
하니
“누구세요?”
하면서 사모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그 뒤에 숙희가 따라 나왔다. 사모님께서는 ‘너는 누구니?’ 하고 물으신다.

소천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숙희가 나서서
“응 엄마 이번에 전학 온 소천이고 교감선생님의 아들이래요.”
하는 것이다. 사모님은 ‘반갑다 어서 들어 오거라.’ 하시며 소천이를 안방으로 맞아 들이셨다.

“이거 저희 어머니께서 가져다 드리라고 하셔서 가지고 왔습니다”
하며 보자기를 내밀으니
“이것이 무엇이니?”
하는 사모님 말씀에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하며 머리만 긁적거린다.
사모님께서는 보따리는 풀어 보시더니만
“음~ 미나리 물김치구나.”
사모님은 손가락으로 미나리 국물을 찍어 드시고는 ‘참 맛있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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