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이의 마음은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오고 가고 있었다. 참말로 여자애들의 속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소천이와 숙희의 1959년도 5학년 1학기는 시작되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소천이가 책상 앞에서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숙희가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책상에 살며시 놓고는 밖으로 휭 하니 나가 버린다. 소천이는 궁금해서 얼른 책상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종이를 조심스레 펴 보았다.

종이에는
‘소천아! 점심 먹고 버드나무 밑으로 나와 꼭~ 할 말이 있단 말이야’
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또 다시 소천의 작은 가슴은 죄인처럼 두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버드나무 밑에 일찍 나가기 위해 소천이는 셋째 시간이 끝나자마자 선생님한테 들키면 야단맞을 각오로 도시락을 까먹었다.

넷째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고 끝나기가 무섭게 숙희가 말한 버드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버드나무는 학교 언덕아래 자그만 연못 옆이다. 한아름의 수양버들로 여름이면 늘어진 가지가 땅에 닿아 바람이 불면 하늘거리는 모습이 아름다울 수가 없었고,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기에 비밀스런 장소 같아서 더욱 좋았다.

소천이는 언덕을 내려가면서 누가 보면 어쩔 새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내려갔다.
그리고 연못 옆에 있는 바위옆에 몸을 숙이고 숙희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숙희가 사방을 살피면서 조심스레 내려오면서

“ 소천아 어딨어.”
한다.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소천이가
“나 여깄어.”
하며 나오자 숙희는 버드나무 가지 속으로 몸을 숨기면서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소천이가 버드나무 앞에서 머뭇거리자 숙희는 소천이의 손을 잡아끌어 당긴다. 끌려 들어간 소천이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여자의 손이라고는 엄마의 손잡아 본 것이 전부인데 좋아하는 여자애가 먼저 손을 잡다니 말이다. 소천이가 버드나무 속으로 들어오자 숙희는 말을 꺼냈다.

“내 말 잘 들어 나도 네가 참 좋거든? 그러니까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그런데 부탁이 있어 너와 내가 좋아서 지낸다는 것을 다른 애들이 알면 연애질 한다고 놀려 댈 테니까 학교에서는 모른 척 해. 그리고 우리 아빠가 아시면 혼날까봐 겁이 나거든.”
하는 것이다.

숙희와 소천의 두 눈은 무엇인가로 인해 반짝 빛나고 있었다. 소천이는 반가운 마음에 숙희를 끌어안았다.
숙희는
“안 돼.”
하면서 뿌리친다.

그리고는 내가 한말을 꼭 지켜야 한다면서 새끼 손가락을 내밀며 약속을 걸자고 한다. 둘이는 새끼 손가락을 걸고 굳게 약속을 하였다. 소천이는 단걸음에 전월산에 올라가 기쁜 마을을 크게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천 임방수

한국농촌 문학회원, 수통골 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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