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얘들아, 깡통 돌리러 가자

25 눈오는 날, 차를 버리다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지난 6일 오후 5시 30분, TV 촬영을 하기 위해 자재를 싣고 대평리 동생네를 들렀다. 

대전 MBC ‘e-세상이야기’에서 촬영이 나왔는데, 나의 집 짓는 일과 일상적인 삶을 찍자고 해 엊그제부터 촬영을 하고 있었다. 

자재 구입을 해 동생네 집에 내려놓고 나오다가 짐을 실은 트럭 뒷바퀴가 보도블록에 걸리는 바람에 바퀴가 찢어지고 휠이 찌그러지는 일이 벌어졌다. 

눈은 내리고 어둠이 내리깔리는 순간 나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은 VJ는 입이 귀밑으로 살며시 올라가며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이거 돈 나가게 생겼군!’ 
먼저 생돈이 나가는 일이 걱정되었다. 

“참, 희한하네요. 제가 카메라를 찍으면서 눈이 오기에 은근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기대했는데.” 

VJ는 직업상 작품 만드는 일밖에 생각을 안 하는 사람 같았다. 나는 속으로 돈이 들어갈 걱정만 하고, 허허 웃어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 카센타가 어디지?”
우선 여동생한테 주변에 있는 카센타부터 찾았다. 

“이거 오늘은 안 되고 월요일에나 가능하겠는데요.”
카센터까지 겨우 끌고 간 차를 보고 카센터 주인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라 휠을 구하려면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황당한 일이었다. 

아내한테 전화를 해 긴급 구조 조건을 물었더니 시간은 있는데 눈앞을 가리는 눈보라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운전 솜씨가 서투른 아내한테 20여 킬로가 가까운 이곳까지 오라고 하는 건 무리였다.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마침 차 시간이 맞아떨어졌다. 지나가는 버스를 무조건 잡아탔다. 시외버스인 줄 알고 잡아탄 버스는 알고 봤더니 시내버스로 손님 하나 없었다.

“이거 조치원까장 가유?”
“예, 타슈!”
“조치원까장 얼마유? 둘이?”
“천육백이십 원썩 내슈!”

버스비도 모르고 거의 20년 만에 타보는 시외버스였다. 아니 시내버스이지만 멀리 시외까지 가는 차를 타 보는 건 거의 20년이 넘는 것 같다. 

버스 안은 을씨년스러웠다. 차 안은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카메라를 들은 VJ와 나는 단둘이서 빈 의자를 옮겨가며 자리를 잡았다. 시내버스는 대평리를 빠져나가기 전에 버스터미널에 서더니 사람들이 어느 정도 찰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떠나야 할 시간도 없었고, 어느 정도 사람들이 차야 떠나는 차였다. 

중고등학생들이 열댓 명 뒷좌석에 차고 시골 아줌마들이 서너 명 타자 버스 운전사는 그때야 만족하는지 대평리 터미널을 슬그머니 미끄러지며 빠져나갔다. 

오른편으로 행정도시 건설청이 보이고, 금강다리가 보이는 정면에서는 눈발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시내버스는 금강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어, TV 촬영하나 보네. 아저씨 어디에서 나왔어요?” 

버스 안에는 중고생인 듯한 사내 애들과 시골 아줌마들이 몇 명 앉아 있었다. 그중에 까불까불한 놈이 카메라가 내 모습을 비추고 있자 신기한 듯 웃어댔고, 시끌시끌 법석을 떠들고 있었다. 밖은 아직도 눈보라가 내리고 있었다.

“응, 대전 엠비시 일요일 프로야, e-세상이야기라고. 14일 여덟 시니까 봐!”

밖은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아줌마가 벨을 눌렀다. 시내버스 기사 아저씨는 정거장에 차를 세웠다. 

“내려주세요.” 

벨이 또 울렸다. 사내아이들은 조잘거리며 시끌시끌 법석을 떨었고, 버스가 정거장에 서자 두어 명의 사람을 뱉어내고, 차는 또다시 눈 내리는 어둠 속을 헤쳐가고 있었다.

나는 아내한테 전화를 했다.
“조치원 역으로 나와, 지금. 종촌쯤 가구 있으니까….” 

차가 달리는데, 시내버스 노선이 참 재미있었다. 지금 1번 국도는 4차선으로 새로 생겼는데 동네는 기존의 꼬불꼬불한 국도변에 있어 시내버스가 새로 생긴 1번 국도만 달리는 게 아니고 옛날에 있던 도로와 동네를 다 들렀다 갔다. 

정거장은 계속 나타났는데 차 안에서 벨이 울리지 않거나 누가 손을 흔들지 않으면 시내버스는 그냥 그곳을 지나쳐갔다. 

“어떻게 오늘 돌발사건이 촬영하는 데 좋았나요?” 
카메라를 촬영하는 VJ가 은근히 현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아 물어보았다. 시내버스는 조치원 읍내를 들어서고 있었다. 

“예, 이거 오늘 촬영이 너무 밋밋했었는데 재밌네요. 자연스럽게 상황 설정이 이루어지고. 마지막으로 사모님이 역전에 마중나와 있고, 선생님과 만나는 장면을 찍으면 되겠네요.” 

밖은 제법 눈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번 촬영은 어떻게 편집되어 전체 이야기 구성상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무척 궁금했다. 어떤 재밌는 에피소드로 그려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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