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얘들아, 깡통 돌리러 가자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20 성욱이 학급 부회장 되다

오전 11시, 아내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통화를 원하시면 아무 버튼이나 눌러주세요… 엄마!”

학교에서 수신자 부담 전화가 오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 있나? 순간 작년에 학교 전학 시켜달라고 울던 아이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때도 학교에서 수신자 부담 전화로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싫다고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읍내 큰 학교에서 시골 아주 작은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것이었다. 아내는 정신 없이 아무 버튼이나 누른 후,

“성욱아! 무슨 일 있니? 다쳤니?”
“엄마, 우리 반 친구들한테 햄버거 돌릴 거야!”
“뭐?”
“엄마! 나 부회장 됐어. 피자랑 치킨이랑 햄버거랑 언제 먹을 거여?”
“응, 알았어. 축하해.”

아침이었다. 아내가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성욱이가 신학기가 되어 회장 선거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성욱이한테 이번 회장 선거에 나가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것 같았다.

“성욱아, 이번에 회장 선거에 한 번 나가 봐.”
“싫어, 나 안 나갈래. 아이들이 안 뽑아줄 것 같아.”

그러나 성욱이는 별 기분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지난해 3학년 때의 뼈아픈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치원 읍내 큰 학교에 다니다가 집 근처 아주 작은 학교로 이사 오고 나서 신학기가 되어 그때도 학교에서 회장 선거 열풍이 불었다.

성욱이가 다니는 3학년은 전체가 11명이다. 6학년 때까지 11명이 끝까지 함께 반을 형성해 가야 하는 아이들이다. 지난해 그런 학급에서 회장 선거에 나갔다가 1표를 얻은 기억이 있어서 올해는 많이 망설이는 것 같았다.

작년에 양심상 자기가 자기한테 표를 던지지 못해 9표 중 1표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래도 다른 곳에서 전학을 와서 텃새 때문에 회장이 못 되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가졌었다.

그러나 올해는 성욱이가 은근히 회장 선거에 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성욱이가 회장이 되는 것보다 아이들 앞에 나가서 자신을 내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침에 아내는 성욱이한테 연설문까지 써주었다.

“내가 회장이 되면 제가 먼저 친구들을 놀리지 않고, 때리지도 않고, 우리 4학년이 재미있고 즐거운 학급이 되도록 만들겠습니다. 저를 회장이 되도록 뽑아주신다면….”

아침에 학교에 나가는 성욱이한테 나도 한 마디 했다. 

“성욱아, 회장 선거 한 번 나가 봐라. 안 되면 어떠냐, 앞에 나간다는 게 중요하지.”
“싫어. 안 나갈려. 친구들이 싫어한단 말야.”

아들은 개구쟁이였다. 선생님은 성욱이가 축구를 제일 좋아하고, 질문도 많고, 다툼도 많고, 재밌는 생각도 많이 한다고 했다. 공부도 반에서 1, 2등을 했다. 

그런데 자기가 생각해도 아이들한테 못된 짓을 많이 하고, 까불고, 떠들고 해서 회장 선거에 나가는데 자신감이 없어 했다.

주영이와 홍주, 성욱이는 같은 동네에서 살기 때문에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다. 더구나 홍주는 성욱이와 집이 붙어 있어서 거의 한 집에서 살다시피 같이 놀면서 지내는 사이였다. 

성욱이가 유일하게 9명 중에 믿는 구석은 홍주 1명인 것 같았다.
나중에 성욱이한테 들어본 바에 의하면, 주영이가 성욱이를 뽑아준다고 했단다.

성욱이는 이 말에 힘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작년에는 자기가 자신을 못 찍었지만 올해는 엄마의 설명도 있고 해서 아마 스스로의 표까지 3표 이상은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주영이가 회장 선거에 입후보하게 되어 성욱이랑 붙게 된 것이다. 

그 순간에 성욱이는 아침에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난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모여 있는데 대한이한테 살짝, “우리 엄마가 햄버거 사준대.”라고 했고, 이 얘기를 듣고 재혁이가 아이들한테 소문을 돌렸다고 했다.

“성욱아, 앞에만 나와 말만 해도 엄마가 햄버거랑 피자를 사줄 테니까 한 번 나가 봐라.”

아내는 성욱이가 작년 3학년 2학기 회장 선거에서 1표가 나와 무척 챙피해 하던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친구들 앞에만 나와도 햄버거랑 피자를 사준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성욱이는 자신감이 없는지 아침에,

“엄마! 애들이 나 안 뽑아 줄 거야. 놀리고 때려서.” 
“그래? 그러면 친구들 앞에서 놀리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사이좋은 학급이 되도록 한다고 해봐!”

저녁에 식구들이 모여 회장 선거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었다.
주영이가 4표로 회장이 되고 성욱이가 3표로 부회장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 식구는 성욱이가 부회장이 된 게 너무 기뻤다. 

성욱이가 자신감이 생긴 것 같고, 아이들한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홍주한테 몰래 알아본 바에 의하면 홍주는 성욱이한테 투표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 선거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고 나서,

“야 이거 불법 선거로 부회장이 된 거 영 아닌데. 뇌물까지 쓰고 말이야.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하는 아빠의 체면이 말이 아닌데. 이거 선거법으로 당선 무효되는 거 아니야?”

그러나 아내 왈, 
“이거 괜찮아, 선거법 100만원 이하는 당선 무효가 아니야. 이 정도면 괜찮은 거야.”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