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라져 가는 풍경들

16 가문의 영광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엊그제였다. 아내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글쎄, 성욱이가 운동회 연습하는데 달리기 3등을 했대요.”

“뭐, 3등? 아니 그것밖에 못 했어?”

“그것밖에라니요? 3등이면 잘한 거지요. 당신은 맨날 꼴지했다면서요?”

“맨날 마당에서 축구 연습하는 놈이, 그것도 매일 두세 시간씩이나.”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시골로 이사 오고 제일 좋은 것 중 하나가 맘껏 뛰어놀 수 있다는 거였다. 

마당에 잔디를 깔아놓았는데 네 살, 일곱 살 먹은 아들 두 놈들이 얼마나 월드컵 축구에 미쳐 날뛰는지 잔디가 배겨나질 못하고 있었다. 

유치원 다니는 큰놈은 하루에도 옷을 몇 벌씩 버리고 새 옷마다 풀물을 들여 매일 할머니한테 꾸지람을 듣곤 했다. 이놈은 축구가 얼마나 좋은지 땀이 범벅이 되도록 축구를 해도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런데 달리기에서 3등밖에 못하다니. 그처럼 운동을 하고 몸이 단단한데 왜 달리기는 그렇게 못하는지 솔직히 서운했던 거였다.

사실 우리 집은 달리기에는 인연이 없었다.

우리 칠 남매 중 아무도 운동회 때마다 3등 안에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들이 운동 감각이 없었는지 나중에 탁구 선수가 된 다섯째 은숙이를 빼고는 그 누구도 운동과 손톱만큼의 인연도 없었다. 

다섯째 은숙이도 사실 몸이 빠르고 날쌘 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몸이 둔하고 뚱뚱했는데 4학년 때 단지 덩치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88 꿈나무로 뽑힌 것이었다. 아내 집안도 4남매가 운동회 때 3등 안에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운동회가 있던 날 아침 온 식구들이 신이 났다.  최대 관심사는 단연 성욱이의 달리기 성적이었다.

아침 새벽부터 늦잠꾸러기 성안이부터 깨우고 부랴부랴 학교로 갔다.
할머니도 잔칫날처럼 즐거워했고 아내와 나도 캠코더까지 준비해 갔다. 징그러운 비가 또 내리려는지 아침부터 날씨가 꾸무럭꾸무럭대기 시작했다. 

멀리서 캠코더로 줌을 당겨 달리기 출발선을 보니 노랑 체육복을 입은 병아리들이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캠코더 줌으로 당겨진 병아리들 속에 아들 성욱이가 보였다. 그 순간에도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있는지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두 주먹을 움켜쥐고 출발선에 들어선 순간 깃발이 올라가고 아이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성욱이는 넷째 줄에서 달렸는데 역시 덩치가 큰 애들이 앞서가고 있었다. 

성욱이는 처음에는 4등인가를 달리더니 내가 서 있는 중간쯤에서부터 친구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와, 2등이다, 2등!”

달리는 폼이 발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엉기적거리는데도 캠코더 줌으로 당겨진 성욱이의 뒷모습은 분명 2등으로 골인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축구로 단련된 체력이 주효했나 보다.

“와, 가문의 영광이다. 성욱이가 2등을 했다.”

할머니가 화통 삶아 먹은 듯 큰 목소리로 운동장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기분이다. 오늘 이 할머니가 외식시켜 준다.”

“와! 할머니, 정말?”

우리 식구들은 기분이 좋아 오래간만에 외식을 했다. 정말 운동회가 있던 날은 가문의 영광인 날이었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