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라져 가는 풍경들

15 두발자전거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시골 이사 오기 전에 대전 자활 후견기관에서 중고 자전거를 두 대 산 적이 있었다. 

거기서 일하는 선배가 옛날 같이 일하던 목수였는데 허리가 안 좋아 조그맣게 중고 자전거포를 차려 자전거를 팔고 있었다. 

그때 마침 돈이 없어 우선 자전거를 트럭에 싣고 와 다음 날 햅쌀로 방아를 찧어 갖다주었다. 

하나는 내가 타는 어른용이었고, 또 하나는 보조 바퀴가 달린 어린이용 자전거였다. 어른용은 가끔 내가 논에 갈 때 타고, 회관이나 이웃 동네 바람을 쏘일 때나 조금씩 탈 뿐 항상 마당 한가운데 세워져 있었다.

요즘은 하도 안 타니까 자전거 부속들이 시뻘겋게 녹이 슬어 볼썽사납게 변해갔다.

아들 성욱이가 타던 어린이용 자전거도 양쪽 보조 바퀴가 불편한지 자전거를 거의 타지 않고 방치돼 있었다. 게으른 애비가 아들 자전거 뒷바퀴가 평크 난 걸 고쳐주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성욱이는 한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밑에 사는 홍주라는 애가 두발자전거 타고 다니는 걸 보고 성욱이가 씩씩거리며 집으로 올라왔다. 

“아빠, 나 저 자전거 두발자전거 만들어 줘.”
“왜?”
“홍주가 자전거도 못 탄다고 놀리잖아. 씨이…….”

잔디밭에서 축구할 때나 다른 장난을 할 때도 항상 지는 걸 못 참는 성욱이가 홍주보다 못하는 게 있다는 걸 참을 수 없었나 보다. 

“그래, 알았다. 아빠가 보조 바퀴도 빼주고 뒷바퀴 펑크난 것도 고쳐 줄게.”

몽키 스패너로 보조 바퀴를 빼고 뒷바퀴 튜브도 꺼내 바람을 넣어 물에 담가 보았다. 

역시 한쪽 구석에 물방울이 뽀골뽀골 올라오는 게 보였다.

어렸을 적 자전거 펑크 때워본 게 생각나 집안에 본드하고 사포하고 고무장갑을 찾아보았다. 제대로 있을 리가 없었다. 본드는 강력본드 쓰던 게 있었고, 창고 뒤편에 찢어진 고무장갑이 보였다. 

어렸을 때 기억을 되새겨 겨우 펑크를 때우자 훌륭한 두발자전거가 되었다. 

다행히 성욱이가 그동안 키가 컸는지 두발자전거에 올라탔는데도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리가 땅에 닿았다.

성욱이는 하루 종일 뙈약볕에 땀을 흘려가며 자전거를 배웠다. 

다리가 까지고 시멘트 바닥에 등이 까지면서도 울지 않고 끈질기게 배우더니 한나절이 조금 지나니까 두 발을 올려놓고 페달을 구를 정도가 되었다. 조그만 놈이 입술을 앙다물고 자전거를 배우는데 깡다귀가 있고 성질이 있어 보였다. 

“아빠, 나 봐! 나 자전거 잘 타지? 조금 있으믄 홍주보다 더 잘 탈 거야.”

나도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전거를 배웠다. 그때는 4킬로미터나 되는 시골길을 거쳐 학교를 다녔는데 좁은 산길을 따라 고개를 세 개나 넘어야 했다. 그러다 나중에 냇물을 따라 신작로가 생겼는데 내가 처음 자전거를 배운 게 이 신작로에서였다. 

아버지가 타는 짐자전거를 몰래 끌고 나와 처음에는 그냥 끌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뛰어가며 발돋움을 해 겨우 한 발을 발판에 얹어놓고 타는 걸 배웠다.

그때 2학년이면 세워놓은 짐자전거보다도 키가 작았다. 핸들을 잡으려면 하늘에 두 팔 벌려 잡아야 했다. 그러다 가랑이를 가운데다 집어넣고 겨우 양쪽 페달을 밟으며 타고 다녔는데, 자기보다 덩치가 서너 배나 되는 짐자전거 타는 걸 보고 어른들은 위태위태해 하기도 했다. 

하루는 아버지를 얼마나 들들 볶고 강짜를 부렸는지 학교 갈 때 짐자전거를 타고 가게 되었다. 

뒤의 짐칸에 가방을 고무바로 쟁여 매고 자전거를 타고 4킬로미터나 되는 학교를 가는데 그때는 그 큰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보다 질질 끌고 가는 게 더 많았지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틀 만에 성욱이의 자전거 실력은 동구밖 회관 입구까지 갔다올 정도로 향상되었다.

홍주와 둘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 골목을 헤집고 다니고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큰 물가를 지나 가겟방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다. 두발자전거 때문에 드디어 성욱이가 집 밖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것이었다. 

성욱이가 어렸을 적에는 대전에서 아파트에 갇혀 살다시피 했다. 할머니가 성욱이를 봐줬는데 하루 종일 아파트 안에서 못 나오고 비디오나 보고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게 전부였다. 

그동안 시골 와서도 동네 개들이 무서워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더니 이제는 자전거까지 배워 일곱 살 먹은 성욱이가 참으로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농막이 있는 곳도 가보고, 옆에 큰집도 가보고, 우리 논이 있는 느티나무 밑에도 가보고.

해만 뜨면 유치원 가는 것보다 자전거 타고 동네 돌아다니는 게 즐거운가 보다. 

네 살짜리 막내 놈도 형들을 따라 네 발 달린 자동차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두발자전거가 아이들의 세상을 더 넓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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