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실록(端宗實錄)’

▲강용수 전 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시의회 부의장.

조선왕조실록 중에서도, 특히 단종실록을 많은 이들이 즐겨 읽는다. 

그 속에는 계유정난과 사육신의 죽음 그리고 청령포의 슬픔에 이르기까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단종 3년(1455년)의 봄날이다. 단종은 마지못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내주고 물러났다. 이 임금이 제7대의 세조이다. 

이 일은 순전히 수양대군의 심복인 한명회, 정인지, 신숙주 등의 음모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때 성삼문이 예방승지로 옥새를 받들어 새 임금에게 바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옥새를 넘겨주고는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한 나머지 통곡의 날을 보내고 있었다.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은 단종을 상왕이라 일컫고 수강궁에서 살게 했다. 세조가 즉위한 다음 해에, 명나라에서 새로 왕위에 오른 세조를 축하하기 위해 사신을 보내왔다. 

조정에서는 그 사신을 맞아 창덕궁에서 잔치를 열기로 하였다. 

이날 성삼문의 아버지인 성승과 유응부가 운검(雲劍)을 맡게 되었다. 성승은 도총관이었으며, 유응부는 일찍이 평안도 체찰사를 지낸 무신(武臣)이었다. 성삼문은 이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했다. 

그는 곧 단종 복위에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거사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다. 연회장에서 성승과 유응부로 하여금 세조와 세자를 없애기로 했다.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김질 등 여섯 사람들은 한명회, 정인지, 신숙주, 권람 등을 처치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세조는 갑작스레 연회 장소가 좁으니 운검을 거두라는 명령을 내렸다. 꾀가 많은 한명회가 미리 세조에게 청하여 운검을 그만두게 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성삼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유응부는 운검은 서지 않지만, 세조를 기다렸다가 죽이면 된다고 주장을 했었다. 성삼문은 그에게 다음 기회를 찾아보자며 만류하였다. 

이날 같이 일을 꾸민 김질은 도무지 일이 성사될 것 같지 않다고 생각을 했는지 장인 정창손을 찾아가 고자질을 하고 만다. 

정창손은 그 당시 좌찬성 벼슬에 있었다. 장인으로 하여금 공을 세우게 하고 자신은 목숨을 구하자는 비겁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위에게 이 사실을 전해들은 정창손은 깜짝 놀라, 세조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곧바로 일러 바쳤다. 

이를 빌미로 세조는 사육신들을 잡아들여 직접 취조(取調)를 하였다.

맨 먼저 끌려 나온 사람이 사육신의 선봉 성삼문이다. 

세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놈! 너는 무엇 때문에 나를 배반했느냐?” 

“옛 임금을 복위시키려 했을 뿐입니다. 어찌 배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어린 조카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빼앗는 삼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하자, 수양은 이성을 잃고 만다. 

형리(刑吏)들로 하여금 시뻘겋게 달군 쇠로 성삼문의 다리를 찔러 꿰뚫었고, 또 팔을 잘라 버리는 악행을 스스럼없이 자행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성삼문은 얼굴 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스럽게 조용히 말한다.


“나리의 형벌은 너무 참혹합니다.” 이미 삶을 포기한 성삼문에게 고문을 가하고, 거취를 분명히 하라고 다그치니, 성삼문은 “이 몸이 죽어서 무엇이 될 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 건곤 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세조가 직접 심문할 때마다 성삼문은 세조를 왕이라 부르기는커녕, 끝내 ‘나리’라고 부르고 있었다.

 세조가 다시 묻는다. 
“네가 나를 ‘나리’라고 하는데 그럼 내가 준 녹봉(祿俸)은 왜 먹었느냐?”고 묻자,

성삼문은 “상왕(단종)이 계시는데 어찌 내가 ‘나리’의 신하인가? 당신이 준 녹은 하나도 먹지 않았으니 내 집을 수색해 보시오.”라고 응답하였다. 

세조가 명하여 집을 수색하니 즉위 첫날부터 받은 녹봉에, 어느 날 받은 녹이라고 표시된 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이런 태도에 화가 난 세조에게 그 어떤 자비(慈悲)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문을 마치고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가는 성삼문은 시 한 수를 읊는다. 

“북소리 둥둥 이 목숨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지는 해는 서산을 넘는구나. 저승으로 가는 길엔 주막도 없다는데 이 밤은 어느 집에서 쉬어 갈 수 있을까?”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니 코흘리게 어린 딸이 흐느끼면서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성삼문은 “사내아이는 다 죽어도 너만은 살겠구나!”라고 하면서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즉, 비록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언정 끝까지 굽히지 않은 절개와 지조는 50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영웅(英雄)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영웅은 누구일까!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이 나라의 역사를 새로이 쓰게 한 박영수라는 특검도 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를 파면시킬 당시만 해도, 그는 누구보다 청렴해 보였다. 

그리고 공정한 듯하였다. 특히 권력 앞에서 조금도 굽히지 않던 당당함은, 많은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었다. 

그는 포청천을 연상케 하는 정의로운 특검인줄 알았다. 
정치적인 논리 때문에 국론을 분열시키기도 하였지만, 국민적인 영웅이 되다시피 하였다. 그 당시의 매스컴은 국정농단과 비선 실세들을 비판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아직도, 그날들이 생생하건만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던 박영수라는 전 특별검사가 지난 3일 밤, 특정경제처벌법과 부정청탁금지법에 의해 전격 구속되었다. 

법원 앞에서의 그 뻔뻔함과 추악함을 우리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받은 돈 혹은 받기로 약속한 검은 돈이 대략 300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정말로 너저분한 놈이 아닐 수 없다. 

즉, 이런 더러운 놈에게 3심제가 왜 필요하냐는 푸념의 소리가 높다. 
수양대군 ‘나리’ 사육신 같은 충신들 죽이지 말고, 이런 더러운 놈들 먼저 처형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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