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라져 가는 풍경들

14 운수 대통한 날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도롱골 천수답 논에 물꼬를 보러 갔다. 

어머니가 아직 시집 안 간 딸들 반찬이라도 해줘야겠다며 대전에 나가면서, 

“비가 많이 온다니께 도롱골 물 대놓은 것 줌 타놓아라. 그냥 놔뒀다간 다 터져 나가니께.” 

신신당부를 하고 바쁘게 딸네 집에 가셨다. 

나는 나중에 불호령이 떨어지는 게 무서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와중에 삽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에 애들만 놓고 가기 뭐해 아들 두 놈을 리베로에 태우고 그 좁은 농로 길을 올라갔다. 

도롱골 우리 논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뭔가 앞바퀴가 푹 꺼져가는 느낌이 들더니 비로 인해 무너진 뚝방에 앞바퀴가 꼭 끼여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몇 번 뒷바퀴를 쳐보았지만 빨리 포기하는 게 상책인 것 같았다. 

다행히 종중 일가뻘 되는 형님이 외딴집 서울 양반 집에 놀러 왔다가 그걸 보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지 않아도 그 무너진 것 갖고 어떻게 고칠까 얘기하고 있는 중인데 그 순간에 네가 와서 빠져버리면 어떡하냐?”

그 형님은 몇 번 시동을 걸고 도와주다 안 되겠는지 2km나 떨어진 동네로 가서 경운기를 끌고 왔다. 역시 시골에서는 경운기만큼 힘센 전천후 농기계는 없었다. 

경운기는 싱겁게 트럭을 끌어 올려 앞바퀴를 빼냈다. 

차를 빼내고 논에 가서 물꼬를 트고 천수답 입구를 비닐로 틀어 막았다. 

동네 형님들한테 술 한잔 산다고 인사를 하고 이젠 집으로 돌아가려고 차를 살살 몰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2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산모퉁이를 살짝 돌아갈 때였다. 

오른쪽 조수석 쪽이 미끄러지더니 허방다리 밑으로 빠져 들어가듯 또랑 밑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난 순간적으로 핸들을 잡고 틀어 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쿵, 하고 애들이 타고 있던 조수석 쪽으로 기울어진 채 벌렁 나자빠졌다. 

흙이 차 안으로 쳐들어 오고 아들 두 놈이 조수석에 뒤엉켜진 채 바르작거리고 있었다. 거기는 2m가 안 되는 도랑으로 낭떠러지처럼 푹 꺼져 내려간 곳인데, 내 차 리베로가 미끄러져 그곳에 처박힌 것이다. 

순간적으로 난 애들을 보았다. 다행히 애들이 안 다친 것 같았다. 

우선 만세를 불러 운전석 차문을 열고 나갔다. 하늘을 바라보게 된 운전석에 앉아 큰아들을 끌어올려 트럭 위에 올렸다. 큰아들부터 밖에 구해 놓았다.

“아저씨, 아저씨! 우리 아빠 차가 또 빠졌어요. 차가 뒤집혔다고요.”

일곱 살 먹은 큰아들은 멀쩡한지 아저씨들을 불러대며 달려가고 있었다. 

아직 남아 있는 네 살짜리 작은 놈은 그 좁은 공간에 순간적으로 혼자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때서야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막내 아들까지 구해내기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뭔 일이여, 또 빠졌다고?”

동네 형님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어온 건 이미 상황이 다 끝난 뒤였다. 

우리 세 부자는 멀쩡한 채 길 위에 서 있었고, 내 차 리베로는 자빠진 황소처럼 도랑에 옆으로 누워 두 바퀴를 들고 있었다. 우선 아이들과 내가 멀쩡하니 됐다는 생각을 했다. 

차를 보니 견적이 200만원 정도는 나올 것 같고 그래도 사람이 괜찮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견인차를 불렀다. 견인차 두 대가 와서 조심조심 차를 꺼내 보니 다행히 차는 생채기 하나 안 난 채 멀쩡했다. 

백미러가 접혀 있고 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물로 깨끗이 씻어놓고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적이었다. 

공업사에 가서 엔진도 보고 이것저것 살펴 보았지만 견인차비만 20만원 물고 그냥 차를 끌고 나왔다. 

두 아들과 내가 생채기 하나 없이 무사한 거나, 차가 수리비 하나 안 들은 거나, 남들이 보면 이번 사고가 순전히 나의 뻥으로만 들릴 정도였다. 

이거 사진으로라도 찍어 놓았어야지, 그 살벌한 사고 현장이 나의 엄살로만 느껴지니, 하여튼 오늘 우리 집은 운수대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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