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라져 가는 풍경들

13 치사한 여자들, 밤에 집 나가다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참 치사한 건 여자들인 것 같다. 

올해 중에 가장 추운 엊그제 이틀 동안 보일러가 작동이 안 되어 엄동설한에 떨면서 잤다. 

내가 사는 집은 목조주택이라 보일러가 작동이 안 되어도 웬만큼 참을 만하지만 올해 들어 제일 추운 날이었다. 

평소 목조주택은 단열이 잘 된다고 큰소리를 친 게 있어 어쨌든 엄동설한에도 밤을 지내야 했다. 목조주택을 짓는 업자라서 목조주택의 단열성을 입증하기 위한 객기라고 누군가 농담을 하겠지만 그만큼 참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추웠다. 여자라고는 두 명이고 남자는 나와 아들 둘인데 남자들은 평소 심야보일러 틀면 팬티만 입고 잘 정도로 열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틀 되는 날 저녁 아내가 작당을 하더니 어머니를 꼬셔 집을 나갔다. 

찜질방으로 도망간 것이다. 자기들만 살겠다고 이 엄동설한에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도망을 친 것이다. 

사실 나도 찜질방을 가고 싶었다. 목욕을 하고 싶기도 하고 오래간만에 식구들끼리 찜질방에서 수다도 떨고 추위도 피해가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놈들이 이날따라 일찍 자는 바람에 깨워서 나가기도 귀찮고 하루종일 신경을 썼더니 피곤도 하고 해서,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자기네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두 여자를 그냥 보내기로 맘먹었다. 

평소에는 팬티만 입고 자다가 살기 위해 내복까지 입어야 했다. 내복에다 옷장에 있는 이불이란 이불은 다 꺼내 깔고 덮고 했다. 

사실 옛날 어렸을 적에는 내복을 입고 살았다. 밖에 나가 구들에 나무를 때고 시커먼 그을음 냄새를 맡으며 잠을 잤다. 그러다 새벽녘에 온기가 빠지면 아버지가 슬그머니 다시 나가 불을 때곤 했다.

그걸 생각하면 참을 만했다. 내복을 입고 이불을 두껍게 덮으면 참을 만했다.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옷을 잔뜩 끼워 입었어도 춥긴 추웠다. 코에 찬바람이 들어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릎이 시리긴 했다. 

아침에 전화가 왔다. 차에 문제가 생겨 공업사에 맡길 테니까 데리러 오라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나간 여자들이 이젠 차가 없으니까 데리러 오란다. 그러면서 지금 보일러 온도가 몇 도냐고 물었다. 

보일러 온도가 올라오지 않으면 집에 안 들어오겠다는 건지. 이걸 참아야 하는지, 그냥 웃어 넘겨야 하는지, 배는 고프고 밥은 얻어 먹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자존심을 꺾어서는 안 되었다. 

“남편, 자식덜 얼어죽든 말든 자기들만 찜질방 간 사람들 알아서 들어와. 택시를 타든 말든!” 하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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