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라져 가는 풍경들

10 버스비를 강탈한 기분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아침마다 전쟁이다. 시골로 이사 오고부터 매일 겪는 일과 중에 하나다. 

아들놈이 8킬로미터 떨어진 조치원 읍내 유치원에 가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며 운전수 역할을 해야 했다. 

오늘도 이놈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밥을 징그러운 벌레라도 삼키듯 하더니 또 늦었다. 아내 동작이 급해지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내가 목수 일을 나갈 때는 대부분 아내가 맡는 역할이지만 오늘처럼 일이 없어 집에 있을 때는 밥이라도 얻어 먹으려면 내가 나가야 한다. 오늘도 새벽부터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는데 아내한테 호출을 당했다.

“여보, 성욱이 좀 데려다 줘요.”
“당신이 갔다 와, 나 컴퓨터 해야 돼!”
“안 돼요, 나두. 오늘 학원에 일찍 나가려면 집안 청소를 빨리 해야 돼요.”
“알았어.”

성욱이가 작년에는 요 근처 내가 다녔던 모교 시골 유치원에 입학했다. 

그런데 그 학교에 전교생이 60여 명이고 유치원은 겨우 10여 명밖에 안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성욱이 또래들이 하나도 없고 형아들이 다섯, 나머지는 동생들이었다.

어느 날 유치원에 갔다온 성욱이가 화가 나서, “아빠, 나 유치원 안 가. 형아들이 나만 놀리구……. 나 유치원 안 갈래.”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냥 하는 소린 줄 알았더니 그 다음 날부터 유치원엔 절대 안 간다는 것이었다. 며칠을 안 가더니 이제는 유치원 가는 것도 잊었나 유치원 간다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여보, 내버려 둬요. 내년에 조치원 대동 유치원에 보내게요. 여기 다녀봤자 6학년까지 성욱이 또래가 없을 텐데. 아예 조치원으로 보내지요. 어차피 내가 출퇴근해야 하니까 같이 다니면 되잖아요.”

아내가 대전에서 하던 피아노 학원을 조치원 읍내 학교 앞에다 차린 지 몇 달 되었다. 아이가 학원 근처 학교에 다니면 도움도 많이 된다고 했다. 

“아빠, 나두. 나두 아빠 따라갈겨. 형아 유치원 따라갈겨.”

막내 네 살짜리가 오늘도 따라 나섰다. 꼭 형 유치원 데려다 줄 때마다 쫄쫄 따라다니는 놈이다.

아내 학원 차 9인승 스타렉스를 끌고 동네 어귀를 지나다 보니 밑에 집에 사는 할머니가 꾸부러진 허리를 하고 걸어가고 있었다. 난 그 앞에 차를 세웠다.

“읍내 가세요? 타세요. 모셔다 드릴게요.”
“아이구, 이거 고마워서. 괜찮은디, 그냥 가두…….”

마을 어귀 똘배상회 앞에 버스 승강장을 지나치려니 동네 어른들이 차를 기다리고 있는 게 또 보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모두들 장을 보러 가는 중인가 보았다. 

“타세요. 시장까지 모셔다들 드릴게요.”
“이거 번번히 미안해서.”
“안녕하세요?”
“아안녕하세여어.”

아들 두 놈들이 합창을 하듯 동네 어른들한테 인사를 했다.

“유치원 가는구나. 오늘은 엄마가 아니고 아빠가 데려다 주네?”
“막내도 유치원 다니나?”
“아뇨. 지 형 유치원 다니는데 따라가는 거예요.”

승강장에서 사람들을 한 차 싣고 가면서 생각하니 버스가 오늘은 ‘손님이 적다고’ 씩씩거릴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시골 버스가 손님들이 없는데 오늘처럼 나같은 사람들이 동네 사람들을 다 싣고 나갔으니…….

“넌 유치원 다니니?”
“네, 대동초등학교 유치원이에요.”
“동생도?”
“아뇨, 얜 내년에 다닐 거예요.”
“몇 살?”
“네 살이에요.”
“옛다. 여기 아이스크림 사 먹어라.”
“아이, 주지 마세요. 애들 버릇 들어요.”

내가 애들한테 돈을 주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동네 어른들 대여섯 명이 두 아들들한테 천원짜리, 오백원짜리, 백원짜리들을 꺼내 주었는데 나중에 아들놈이 저금해 달라고 맡겼는데 무려 3,300원이나 되었다. 

엊그제도 이렇게 동네 사람들을 태워다주고 애들이 벌은 돈이 1,800원이나 되었다. 난 괜히 버스기사 양반 버스비를 강탈한 기분이 되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애들한테 주는 용돈이 부담스러워 동네 어른들도 못 태워다 줄 것 같다. 

노인네들도 미안하니까 애들한테 용돈을 주는 거지만 괜히 버스한테나 노인들한테 부담스러워 이 짓도 못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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