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라져 가는 풍경들

09 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대전에서 후배 부부가 놀러왔다. 마침 집에 술안주 할 것도 없고 해서 후배한테 논에 우렁이나 잡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뭔 우렁요?”
“아 글쎄, 쫓아만 와봐. 양동이 갖구.”

봄에 모내기를 하고 거의 처음 가보는 논이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성화를 해대도 난 별로 논에 갈 생각이 없었다. 벼야 심어놓으면 지놈들이 알아서 클 텐데 내가 논에 한 번 간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는가? 농약도 한 번 안 하고 풀 약도 하지 않았다. 

처음 여기로 이사 오면서 짓기 시작한 논농사가 올해로 3년째였다. 
처음엔 동네 형님들에게 농사를 그렇게 지으려면 때려치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영농 후계자라는 형님도 이것저것 훈수를 하며 잔소리를 하셨다. 논두렁을 깎아야 벼를 많이 먹는다, 또랑을 깨끗이 풀 베야 병충해가 없어진다 등등 볼 때마다 귀가 따갑도록 충고였다. 

논에는 벌써 사람의 종아리만큼이나 벼가 올라와 있었다. 장마철이라 어머니가 물꼬를 터놓았는지 물이 많이 빠진 채였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농약하고 비료 뿌려대는 다른 논보다 우리 논의 벼가 더 틈실해 보이고 싱싱해 보였다.

“야, 이게 바로 자연농법에서만 나는 토종 우렁이야.”

내가 논에서 손톱만한 우렁들을 주워 들고 후배한테 보여주었다. 

“형, 저기 봐. 우렁이가 시커멓게 깔렸는데?”
“근데 왜 이리 우렁이 작아?”
“작지. 토종 우렁은 원래 이만한 거야.”

정신없이 양손에 우렁이를 주워 후배가 가지고 온 양동이에 담았다. 
작년에도 논에서 일한 기억보다 서너 번 논에서 잡아먹은 우렁이 생각뿐이었다. 작년에는 대평리 사는 매제와 우렁이를 잡았는데 그때는 그 넓은 안뜰 평야에서 우리 논에만 유일하게 우렁이가 살았다. 

사실 우렁이 농법이라고 유기농하는 사람들이 하는 우렁이는 수입 우렁이로 크기도 거의 알밤만 하고 돈주고 사다 논에 뿌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이 우렁이가 정신머리가 없는지 벼까지 갉아먹어 우렁이 농법에 대해 재검토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논에 있는 우렁이는 자연적으로 생긴 조선 토종우렁이였다. 농약을 안 하니까 자연적으로 생겼는데, 예전 같지 않아 논에 두루미나 그런 새들이 없어 우렁이가 논에 시커멓게 크고 있는 것이었다. 

한 10분 정도 되었나? 나중에는 후배까지 바짓가랑이를 걷고 들어와 잠깐 만에 한 바가지 정도의 우렁이를 잡았다. 무쳐 먹어도 몇 접시는 나올 듯했다. 우리는 온몸에 진흙 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어디 갔다 오냐?”
집에 들어오자 어머니가 신통치 않은 눈치로 물었다. 
“응, 논에 가서 풀 뽑다가 우렁이 몇 마리 잡았어요. 이거 좀 무쳐줘요. 후배랑 쐬주 한잔 하게…….”

능청스러운 나의 둘러댄 말에 금방 대거리하듯 어머니는 말했다. 

“일은 니가 뭔 일을 해, 또 우렁 잡으러 갔지? 남새밭에 가서 오이나 따와.”
“알았어유. 저기 독막골에 가서 미나리두 좀 뜯어 올게요. 우렁 씻어 삶아 놔요.”

조치원에 있는 친구까지 불러 또 술판을 벌였다. 입안에 살살 녹아나는 우렁이 무침에 먹다 보니 소주병이 계속 자빠지고 있었다. 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 이것이 시골 사는 맛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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