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라져 가는 풍경들

08 날라리 농사꾼의 모내기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저녁에 사무실에서 돌아오니까 어머니가 화가 잔뜩 나서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녁을 돌미나리에 들기름을 넣어 간단히 비벼먹고 나서야 어머니의 화풀이가 시작되었다.

“니가 뭘 잘 났다고 고집여. 동네 사람들 다 그러는데 마지기당 비료 세 짝은 넣어야 한다더라. 다들 그랴. 한평생 전문적으로 농사 짓는 사람덜이 잘 알지. 니가 뭘 안다고 그랴.”

“아 엄니두, 아침에 얘기했잖아요. 비료푸대에 분명히 300평당 40Kg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 사람들은 까막눈인가? 써 있는 것도 모르고 비료만 잔뜩 주면 벼가 많이 나온다나. 사람들이 욕심들만 많아 가지고 비료만 많이 주면 벼가 많이 생기나?”

아침에 비료를 주다가 어머니와 논바닥에서 한판 시끄럽게 싸운 적이 있어 아직 냉전 중이었다. 어머니가 하도 비료를 줘야 한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못 이기는 척 농협에서 나온 비료를 뿌렸다. 

그렇게 비료포대에 적혀 있는 대로 비료를 뿌리고 있는데 마지기당 한 짝씩을 더 뿌려야 한다고 우기시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비료가 약해 한 짝씩 더 얹는다고 했다.

어머니의 성화 때문에 이번에는 비료를 주긴 했지만 작년에는 비료도 안 주고 무사히 지나갔다. 비료를 안 줬는데도 벼만 잘돼 매상 때 1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올해에는 농협에서 수매값은 내리고 뜬금없이 비료만 농민들한테 잔뜩 안겨 주었다. 그것도 무상으로 비료를 뿌려대니 농민들은 생각없이 논에다 뿌려대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는 흙비라고 농협에서 기계를 사서 논에 직접 뿌려주기까지 했다

며칠 전에도 어머니와 한바탕 싸움을 했다. 

논두렁 ‘앙거라’, 논 트랙터로 썰기 전에 비료를 줘라, 등등 잔소리를 하시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난 될 수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자연농법을 추구하는데 벌써부터 논두렁을 깎으라고 난리였다. 

며칠 전에는 내가 하도 말을 안 들으니까 동네 할아버지한테 술을 잔뜩 받아주고 새벽 한나절 일해주기로 약속을 받았나 보았다.

그 동네 할아버지는 몇 번씩이나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다 잠이 들었단다.
 
그런데 그분이 전날 밤 술을 얼마나 많이 드시고 주무셨는지 한참을 자다 일어나 급한 김에 논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갔다나. 

삽을 들고 논에 들어가 한참 일을 하다 보니 날이 샐 때가 되었는데도 날이 밝지 않아 시계를 보니 글쎄 저녁 9시밖에 안 되었다고 했다. 

그래 술 취한 김에 창고 옆에서 자다 새벽에 일하려고 누우니 추워서 도저히 못 잘 것 같아 다시 집에 갔다가 자고 다시 나와 일을 했다고 했다.

“아, 엄니! 챙피하게 논두렁 못 깎으면 말지, 왜 사람까지 사서 논두랑을 앙거요? 앙그긴…….”

모내기는 기계를 가지고 있는 동네 형님이 알아서 해주었다. 
내가 혼자 모자리를 떼어다 이앙기를 하는 형님께 모판을 올려주면 이앙기로 모를 심어주는데 8마지기를 새벽 6시에 시작해서 오전 11시쯤에서야 끝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10여 명의 동네 사람들이 못줄을 띄어가며 심었어도 하루 종일 심었는데 기계가 좋긴 좋았다. 

안뜰에서 맥주 판을 만들고 이웃 주변에서 일하고 있는 동네 어르신네들한테 술을 따랐다. 우리집 옆에 옆에 사시는 내 친구 윤정이 아버지는 내일 모레가 팔순인데 올해 또 새로운 이앙기를 샀다고 자랑하셨다. 

“이거 돈이 좋구먼. 속 썩여 새로 이앙기를 샀더니 아주 잘 나가.”
“형님, 몇 해 사신다고 또 이앙기를 사셔요?”
“그람 어띡햐. 남헌티 맨날 부탁할 수두 구.”
“그렇다구 그 비싼 기계를 또 사유? 농사 져서 이앙기 값이나 나오것슈?”
“나오나 안 나오나 농사는 지야 할 거 아녀? 농사꾼이 농사 안 지믄 뭐해?”

모내기도 올해가 끝이다. 내년에는 직접 논에다 볍씨를 뿌리는 직파를 해볼 생각이다. 보리를 심듯이 논에 물도 대지 않고 소독도 안 하고. 그러면 이앙기 값, 트랙터 값 농약 값 등이 절약될 테니까. 

예전에는 모두 다 밭벼를 심었었는데 몇 십 년 전부터 단위 면적당 소출을 많이 내려고 수경작을 시작했다. 

그러다 관행농법으로 굳어져 소독, 모내기, 물대기 등 일거리만 많아져 지금은 논농사 하면 괜한 일거리만 많은 농사로 전락했다. 

그래서 나부터라도 새로운 농사를 실천해 볼 생각이다. 

날라리 농사꾼은 일을 안 하고 최대한 손을 안 가게 하는 게 상책이니까. 일본의 자연농법의 창시자 후꾸오까 마사노부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이 자연한테 손 댄다고 얼마나 많이 수확되냐? 자연 그대로 놔두면 자연은 스스로 살아간다.”
이 단순한 진리를 왜 인간은 실천하지 못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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